정을 갈라놓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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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할 때 불행을 느낀다. 다만 자기가 불행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와 모르고 있을 때 중 어느 때가 더 불행하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번 한필화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1·4 후퇴 때 한필화가 월남하는 언니 오빠와 생이별했을 때는 여섯 살, 슬픔을 알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그후 20년, 그 동안에 이별의 쓰라림은 잊혀질 수도 있다. 혹은 낯설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는 못 볼 혈육에 대한 그리움만은 더해 갔을 것이다.
이런게 혈육의 정이다. 아무리 훈훈한 사람의 입김을 얼려 놓는 것이 공산주의의 정체라 하더라도 이런 애틋한 인정까지도 뿌리째 뽑아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열네살의 어린 조카 김영희 선수가 한필화를 알리는 없다. 그리움도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이모라는 말에 반가움이 앞서 링크를 몇번이고 맴돌았다는 그 어린 마음.
그러나 『아는 체 했다가 혹시 이모에게 무슨 화가 미치면 어떻게 해요』하면서 안타까와 했다는 어린이의 마을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티없는 혈육의 정뿐이었을 것이다.
한필화라고 이런 정이 없을 리는 없다. 무엇보다도 강한 게 피다. 현지에서의 기자 회견 중 그녀는 공산주의자라고 친척도 몰라보는 줄 아느냐고 핏대를 올렸다고 한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하고 있는 것이 그녀 자신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없는 동정이 쏠리기도 한다.
7년 전의 신금단의 경우 15년만에 꿈결처럼 이루어진 부녀의 상봉은 15분만에 끝났다. 그사이에 서로 나눌 수 있던 것은 그저 『아버지』『금단아』하는 피맺힌 두마디 뿐이었다. 그후 신금단의 소식은 전혀 알 길도 없게 됐던 것이다.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아버지였겠는지. 그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게 기를 쓰던 북괴였다. 그때 온 세계에 일으켰던 반향에 미루어 이번에는 더욱 교묘하고 악랄한 구속이 있을 게 틀림없다.
6남매를 4자매뿐이라고 우기면서 김영희 양의 어머니와의 혈연 관계를 부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코 흘릴 때 업어주던 언니였다. 눈물을 닦아주던 오빠였다. 잊혀 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오빠 언니를 없다고 부정해야만 하는 그녀의 안타까운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민족의 비극이라고만 하기엔 너무도 애처로운 얘기다. 언제나 마음놓고 피의 정을 나눌 수 있게 될는지 새삼 붉은 땅이 원망스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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