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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주유소 대도시에 더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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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권명중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중국집·미용실·제과점과 같이 수요가 동네로 한정되는 지역시장에서는 좀처럼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가게가 가격을 올릴 때 한 가게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그 가게로 수요가 몰릴 텐데도 그런 일이 지역시장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설명과 달리 지역시장에서는 경쟁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지역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그냥 경쟁이 아니라 ‘전략적 경쟁’이다. 한 미용실에서 고객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내렸다고 치자. 가격을 내린 미용실로 고객이 몰린다. 그러면 근처 미용실도 고객 확보를 위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처음 가격을 내린 미용실이나 다른 미용실에도 고객은 늘지 않고 매출 감소만 발생한다. 동네 가게들은 가격 경쟁이 서로의 손실만 늘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격 경쟁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가게가 가격을 올릴 때는 가격을 따라 올리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암묵적 담합’을 한다.

 주유소 시장은 품질 차별이 어려워 가격 경쟁을 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주유소는 원유의 국제 가격 변화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지만 소매 마진을 깎아 먹는 경쟁은 하지 않는다. 주유소들은 원유 가격이 오를 때는 도매 가격 변화를 빛의 속도로 반영하지만 원유 가격이 내릴 때는 그 반영속도를 늦춘다. 이것이 담합 없이도 가능한 것은 주유소 사이의 경쟁이 ‘전략적 보완재’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의 시장에 알뜰주유소 도입은 소비자 후생 증가를 위한 의미 있는 정책 대응이다. 알뜰주유소는 석유공사가 공급하는 휘발유를 낮은 도매가격으로 받는다. 따라서 일반주유소와 똑같은 마진을 붙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소매 가격으로 팔 수 있다. 석유공사는 알뜰주유소에 일반주유소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휘발유의 유통구조를 이렇게 설계함으로써 알뜰주유소가 일반주유소보다 L당 평균 40원 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알뜰주유소의 효과는 이것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누리는 가격의 이점보다 알뜰주유소의 존재로 인해 지역시장에 있는 일반주유소들이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하고 경쟁을 유인하는 ‘전략적 효과’가 훨씬 크다는 데 있다. 전에는 꿈쩍 않던 정유사 간 시장점유율이 알뜰주유소 도입으로 2.4% 이상 변동했는데, 이것은 알뜰주유소의 전략적 역할로 인해 가격 경쟁이 부분적으로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알뜰주유소의 전략적 역할로부터 나타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석유공사와 알뜰주유소의 계약에 일정 수준의 소매마진율을 지키고, 도매 가격 변화가 소매 가격에 즉각 반영되게 하는 것을 의무사항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알뜰주유소의 구성비를 바꿔야 한다. 현재 966개의 알뜰주유소 중 160개의 주유소가 고속도로에 있다. 고속도로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략적 효과를 고려하면 더 많은 알뜰주유소가 대도시에 배치돼야 한다.

권명중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