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반전 앞장서는 히로시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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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남쪽에 있는 히로시마(廣島)는 태평양전쟁 끝무렵인 1945년 8월 6일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히로시마는 반전(反戰).평화의 도시가 됐다.

그것을 상징하는 곳이 평화기념공원이다. 지난 19일 이곳을 찾았다. 건물의 절반 이상이 무너져내린 '원폭 돔'이 전쟁의 상처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30여명의 남녀노소가 헌화하고 있는 평화기념탑을 지나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들렀다. 일본인.외국인 등 관람객 40여명이 있었지만 붉은색의 침침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참담함에 압도돼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담은 영상자료, 원폭 폭발 전후의 시가지를 대비시켜 놓은 미니어처, 원폭 사망자 사진 등 각종 전시물들이 관람객을 숙연케 했다.

자원봉사자인 다케무라 지오리(竹村千織.여)는 "55년 개관한 이후 연평균 1백여만명이 찾아와 지난해 총 5천만명을 넘어섰다"고 소개했다. 이라크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탓인지 최근 들어 관람객이 더욱 늘었다고 한다.

요즘 히로시마 시민들은 이라크 전쟁 반대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피폭자단체 등 15개 시민단체는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 반대 서명을 받고 있는데 서명자가 5천명을 넘어섰다. 다음달 초 서명자 명부를 미국 대사관에 제출할 계획이다.

지난 21일에는 시민단체 대표들이 도쿄(東京)의 이라크 대사관을 방문,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대량살상무기 제조.보유 반대 및 폐기 요청서'를 전달했다. 미국에 협조적인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유인물도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다음달 2일에는 시민 1만여명이 줄을 서 영어로 'NO WAR NO DU'란 '인간 글자'를 만드는 행사가 열린다. DU는 미국이 91년 걸프전 때 이라크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의 약자다.

주최 측은 이 글자를 상공에서 촬영해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광고로 게재할 계획이다. 행사를 준비 중인 모리타키 하루코(森瀧春子.여) '핵무기 근절을 추구하는 히로시마 모임' 공동대표는 "지난해 12월 이라크를 방문했는데 백혈병이나 암 등 방사능으로 인한 환자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전쟁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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