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환경보호 남다른 독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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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독일인들의 환경보호는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몸에 배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기본이고, 가게에는 포장비닐이나 마분지 케이스 등을 수거하는 통이 마련돼 있다.

유통과정에선 필요하지만 집에 가면 곧바로 쓰레기가 되는 이런 물건들을 아예 가게들이 수거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하나가 더 추가됐다. 모든 캔과 병에 25~50센트(3백~6백원)의 저당금을 매겨 이를 강제 회수키로 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5백㏄짜리 맥주 한 캔의 값은 50센트지만 소비자는 75센트에 산다. 25센트가 저당금으로 추가된 것이다. 이 25센트는 빈 캔을 다시 가져오면 반납해 준다. 그것도 현금으로 반납해주는 것이 아니고 다른 물건을 살 때 그만큼 깎아주는 것이다.

이게 보통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니다. 빈 캔을 반납해 저당금을 되찾기 위해선 반드시 물건을 산 가게에 영수증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주부들이 이 가게 저 가게에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구분해 보관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따라서 독일 주부들은 빈 병과 캔을 영수증에 따라 구분해 보관했다가 이를 산 가게에 다시 가져가고 있다.

원천적으로 저당금을 되찾는 일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기차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맥주 한 캔을 사면 그는 꼼짝없이 50센트에서 50% 인상된 75센트를 내야 한다. 25센트 돌려 받겠다고 함부르크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여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지난해 이 제도를 도입키로 하자 소비자는 물론 기업들도 강력 반대했다. 환경보호도 좋지만 너무 불편하고, 병이나 캔으로 된 음료수의 소비가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올 1월부터 이 제도를 강행했다. 당연히 빈 캔이나 빈 병은 거의 대부분이 수거되고 있다. 이를 반납하지 않고 쓰레기로 버리면 그만큼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올 10월부터 거의 모든 음료수 용기에 이 제도를 적용키로 했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불편한 제도를 국민 대부분이 묵묵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시민정신이 부럽다.

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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