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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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27면

까마귀와 용을 합친 단어 오룡(烏龍)은 중국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미더운 개 충견(忠犬)이다. 중국 진(晋)나라 때 강남 회계(會稽) 땅에 장연(張然)이란 사람이 살았다. 부역에 징발돼 여러 해 집을 비웠다. 그 사이 부인이 노비와 사통(私通)했다. 장연이 돌아오자 불륜을 들킬까 두려워한 노비가 살인을 계획했다. 장연은 개 한 마리를 키웠다. 이름은 오룡(烏龍). 영리한 오룡은 노비가 손을 쓰려는 찰나에 몸을 던져 주인을 구했다. 중국 설화집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로부터 오룡이 충직한 개의 대명사가 됐다.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오룡이 누워 태연자약하고, 푸른 까마귀 차례로 날아가네(烏龍卧不驚 靑烏飛相逐)”라며 봄날을 노래했다.

烏龍 <오룡>

둘째, 중국 푸젠(福建)에서 나는 차(茶)의 이름이다. 옛날 이 지역서 찻잎을 따던 농장 주인이 검은 뱀[烏龍]을 보고 놀라 도망쳤다. 며칠 후 돌아와 보니 떨어진 찻잎이 반쯤 발효돼 맛과 향이 근사했다. 이에 이름을 우룽차(烏龍茶·오룡차)라 불렀다고 한다. 반(半)발효차를 처음 만든 사람의 이름이 오룡이었다는 설, 찻잎이 까마귀같이 검고 용의 발톱처럼 생긴 모양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셋째, 뜻밖에 저지른 실수를 말한다. 자살골이 중국어로 ‘우룽추(烏龍球)’다. ‘오룡’은 광둥(廣東) 사투리로 ‘잘못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게다가 발음이 영어 ‘자살골(own goal)’과 비슷하다. 1960년대 어느 홍콩 기자가 ‘own goal’을 한자 ‘오룡(烏龍)’으로 번역해 보도한 데서 유래했다.

중국에서는 지난주 ‘올림픽 오룡’ 사건이 화제였다. 8일 새벽 2020년 여름올림픽 개최지 선정 1차 투표 결과 2, 3위의 득표 수가 같았다. 1위 일본 도쿄를 제외하고 터키 이스탄불과 스페인 마드리드가 2차 투표에 들어갔다. 여기서 이스탄불이 이기자 전후 맥락을 놓친 중국 국영 통신사 기자가 속보로 “이스탄불 승리, 도쿄 탈락”을 타전했다. 마감에 쫓긴 한 중국 신문이 이를 받아 1면에 대형 오보를 냈다.

한국에서는 지난주 ‘오룡 행정’ 사건이 터졌다. 법무부가 성남보호관찰소를 야반(夜半)에 기습 이전했다가 학부모들의 격렬한 반대시위에 부닥쳐 이를 백지화했다. 나라님 눈치를 보느라 주민 여론을 무시한 ‘꼼수’는 결국 자충수(自充手)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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