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고착된 시각에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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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 앞에 펼쳐진 책과 노트는 책상이 받쳐주고, 책상은 방바닥이 받쳐주고, 방바닥을 포함한 집의 기초는 지구가 받쳐주는데, 그러면 지구는 무엇이 받쳐주는가?

지동설을 처음 받아들였던 조선시대의 학자들도 지구가 왜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몇백년 전 사람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도 지구를 받쳐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에 답하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래'가 가리키는 것은 공간상의 어느 특정한 방향이 아니라, 지구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물체가 떨어지는 아래 방향은 브라질에서는 위 방향이다.

지금 해가 뜨는 지역의 동쪽 방향은 지금 해가 지는 지역의 서쪽 방향이다. 이렇게 동서남북과 위아래라는 방향은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국지적으로만 유용한 개념이다.

그나마 지표면에서는 위아래라는 방향 설정이라도 가능하지만 지구를 떠나면 그것마저 불가능하다. 우주 공간으로 나가게 되면, 위아래라는 방향 개념은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다. 아래라는 것이 없으니 지구가 떨어져야 하는 방향도 없고, 따라서 '지구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우주 공간에는 위아래 없이 만유인력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수많은 천체가 깔려 있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구본은 마치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을 하는데, 이 경우에도 북반구가 꼭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모습이 우리 눈에 익숙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왜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지표면 상에서만 국지적으로 유용한 방향 개념을 전 우주적으로 부적절하게 확대시킨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매한 질문에 우리가 말려드는 이유는 무거운 물체가 아래로 낙하하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예외 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국지적 경험만 해왔을 뿐 지구를 떠나 지구 전체를 바라보는 경험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했던 것에 기초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이뤄지고, 다시 이에 의해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착된 시각에서 벗어날 때 세계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백척간두에서 일보 전진하라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의지해 왔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신의 전존재를 근원에서부터 철저히 의심하라는 것이다. 발상의 완전한 전환 없이는 창조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과 악도 시대와 지역, 위치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시각으로 판단한 것이다. 방향과 마찬가지로 국지적 개념이다. 그래서 인류의 공동선에 위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집단은 최첨단의 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첨단 무기를 중동의 한 국가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 수많은 미군 병사의 목숨을 구하고 전쟁을 종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문명의 치명적인 과오였다. 이제 다시 인류 문명의 발생지에 폭탄을 쏟아붓는 문명적 과오를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양형진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