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룰라 개혁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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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달 2일 취임한 브라질 최초의 좌파지도자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빈곤퇴치를 노린 사회주의적 개혁과 국제자본 유치를 의식한 시장우호적 정책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룰라 대통령은 최근 지지기반인 노동자당의 30%를 차지하는 강경 좌파로부터 "적극적인 사회개혁을 단행하겠다던 선거운동 당시의 공약은 어디로 갔느냐"는 공격을 받았다.

반면 우파 야당 측은 "룰라 대통령이 무리한 금리인상 등으로 경제성장을 위협하고 있다"며 경제재건을 위해 보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펴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브라질 유력지 '에스타토 데 상파울루'의 정치평론가인 길베르토 데 멜로 쿠야와스키는 "현재 우파는 룰라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신중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고, 좌파는 그가 사회주의 대의를 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룰라 대통령은 취임 당시 "브라질에서 더는 끼니를 굶는 이가 없도록 만들겠다"며 기아퇴치를 최대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이달 초에는 국방비로 책정된 예산을 전용, "1천5백만 빈곤 가구에 한달에 14달러(약 1만6천원)의 식생활비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 8주 만에 룰라 대통령은 이 빈민구제 예산을 삭감키로 결정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정부 지출을 대폭 줄이기로 결정한 데 따른 조치였다.

지난주 세계은행이 '경제성장과 빈곤퇴치의 조화로운 추진'을 전제로 브라질에 10억달러를 추가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자, 그는 적극적으로 차관 유치 의사를 보이며 "외채는 반드시 상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룰라 대통령이 시장친화 노선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아직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21, 22일 브라질 27개주의 주지사들과 회의를 열고 '부익부 빈익빈' 해소를 위한 연금.세제 개혁방안을 논의했다. 브라질 정치분석가인 빌라스-보아스 코레아는 "이같은 움직임은 룰라가 사회주의 이상에 입각한 개혁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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