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성 유방암 치료약, 건보적용 안 돼 가족도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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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극복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암 세포의 전이와 재발이다. 어떤 암 치료법이든 암 세포를 100% 없애지 못한다. 특히 유방암은 암 세포가 천천히 성장해 10년이 지난 뒤에도 안심할 수 없다. 요즘 젊은 유방암 환자가 증가하면서 이런 사례도 덩달아 늘고 있다. 재발 유방암은 예후도 좋지 않다. 다른 장기로 전이됐거나 진행성인 경우가 많다. 다행히 최근 전이·진행성 유방암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신약이 나왔다. 문제는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아 경제력이 없는 환자는 약을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곽점순(사진) 회장을 만났다. 그는 2002년 고려대병원 안암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유방암은 조기 발견·항암 치료만큼 재발 관리가 중요하다. 곽 회장은 “유방암은 진행속도가 느리고 생존 기간이 길어 착한 암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유방암은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생존율이 95% 이상으로 높다.

치료 성적이 좋은 만큼 당연히 유방암 환자로 살아가는 기간도 길다. 그만큼 재발 위험이 커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곽 회장은 “유방암은 고혈압·당뇨병처럼 암 재발 여부를 평생 점검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라며 “암 덩어리를 떼어내 몸은 나아졌지만 항상 마음을 졸이면서 생활한다”고 토로했다. 유방암 환자는 수술 직후부터 3년 동안은 3개월에 한 번씩 재발 여부를 확인한다. 이후에는 6개월~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받는다.

2008년 유방암학회에서 발표한 유방암백서에 따르면 유방암 재발률은 20~30%다. 재발 환자의 70%는 암 수술 후 2~3년 이내 암세포가 뼈·간·폐 등 유방 주변조직으로 퍼진다. 한번 재발해 치료해도 다시 재발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재발 유방암 치료가 까다로운 이유다. 평균 생존기간도 1년6개월에서 최대 3년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재발 유방암은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호르몬 요법으로 치료한다. 하지만 이 치료법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호르몬 수용체가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겨 암 억제력이 낮아진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신체 호르몬 균형이 깨져서다. 곽 회장은 “재발 유방암 환자는 한 차례 치료에 실패해 육체적·심리적으로 움츠러든 상태”라며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폐경 증상이 나타나고, 갑자기 심하게 하혈을 한다. 몸 상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면서 생활이 엉망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암세포 성장을 방해해 재발·전이성 유방암을 치료하는 약(아피니토)이 나왔다. 정상 세포를 제외하고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단백질에만 작용해 부작용이 적다. 호르몬 치료 내성을 높이는 단백질 활동을 억제해 호르몬 치료의 효과를 높인다. 대규모 임상 결과 호르몬 치료만 받았을 때 암세포가 성장하지 않는 기간이 4.2개월에 불과했지만 아피니토를 복용하면서 호르몬 치료를 받았을 때는 15.2개월로 2배 이상 늘었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이 약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거의 없다. 아직까지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 탓이다. 곽 회장은 “좋은 약이 있어도 치료를 받지 못해 힘들어 하는 환자가 많다”며 “연합회가 전국 유방암 환자와 가족의 소원을 담은 탄원서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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