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토론방] 가정폭력 처벌, 피해자 요구 필요하나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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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경실씨의 가정폭력 피해 사건을 처리한 경찰의 태도와 법 집행 과정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당시 李씨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또 실제로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처벌 요구 운운하며 신속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물론 가정폭력방지법에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현행범에 관해서는 피해자의 요구가 없더라도 긴급체포할 권한이 있으며 가정폭력 방지법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상습적인 가정폭력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피해 상황은 수없이 많다. 실제로 가정폭력 피해자의 14%가 목을 졸리거나 흉기에 찔리는 등의 가혹한 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 상황 속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거나 처벌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경찰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 문제를 앞세워 사건을 관망만 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격리 등을 통해 적극 대처하고 가해자를 계도해 나가야 한다.

가정폭력을 이제 '가정의 보호'라는 미명 하에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경찰이 인지하면 피해자의 동의 없이도 즉각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

김지선(서울강서양천 여성의 전화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