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위원은 화해 이끄는 동네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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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30년간 판사로 일할 땐 엄정한 판결을 내리기로 유명했다. 2002년 서울고법원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고 국내 굴지의 로펌인 법무법인 율촌에 둥지를 틀었다. 올 봄, 꼬박 10년간 변호사로 일하던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조정센터였다. 법정으로 가기 이전에 당사자간 화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구다. 김대환(71·사진) 서울조정센터장 겸 상임조정위원을 14일 만났다.

 김 센터장은 ‘법관과 변호사, 조정위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에 “재판이 엄정한 판결로 승패를 명명백백하게 가리는 일이라면 조정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화해를 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부터 일을 했는데, 조정위원의 역할은 동네촌장과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옛날엔 분쟁이 생기면 나이 많고 현명한 촌장과 같은 동네 어르신이 나서서 이 사정 저 사정 다 들어줬죠. 서로 조금씩 양보하게 한 끝에 화해를 시키고 분쟁을 끝냈습니다. 그게 조정위원이 하는 일입니다.”

 김 센터장은 “판사, 변호사도 보람있지만 ‘끝까지 가보자’며 극한의 대결로 치닫는 양 당사자를 설득해 분쟁을 끝낸다는 점에서 조정위원이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추상 같은 판결을 내리던 법관시절과 달리 그의 표정엔 ‘동네 어르신’의 온화함이 묻어있었다. 그가 199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선거사범의 당선무효형 선고건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조정의 노하우로 ‘경청’을 거듭 강조했다. 듣고 또 듣다보면 사건의 핵심을 빨리 파악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양 당사자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된다는 거였다. 그는 “조정기일엔 하고 싶은 말 다하게 한다”며 “아무리 할 말이 많은 사람도 15분, 20분 정도 지나면 할 얘기가 떨어져 상대방의 얘기를 듣게 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가급적 많은 사건을 처리하려 한다고 했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다툼의 악순환 구조를 소송 전에 매듭짓고 싶다는 거다.

 그러면서 최근 구두 납품업자와 판매업자간 손해배상 소송을 소개했다. "납품받은 구두가 못쓰게 돼 800만원 어치를 버려야 되는 일이 생겼어요. 첫 전화통화에서 납품업자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자 일이 커졌죠. 판매자가 이미지 회복을 위한 광고비용 등을 포함해 1억원을 배상해 달라고 소송을 낸 거예요.”

김 센터장은 조정에 회부된 첫 기일에 납품업자에게 판매업체 사장을 만나고 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음 기일에 2000만원으로 서로 합의해서 왔더라고요. 그간 전화통화만으로 싸우다가 만나서 얘기하니 쉽게 풀린 겁니다. 3심까지 가는 민사 소송 중에 이렇게 해결이 가능한 게 부지기수입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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