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철학」재 천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닉슨」대통령은 연두 교서라는 이름의 『1년지계』를 내 놓은지 한달도 못돼 미국의 『10년지계』에 해당하는 70년대 세계 정책 교서를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공약을 했기 때문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개입했기 때문에 공약하는 것이다』고 말했듯이 지상의 초대국으로 세계 도처에 『개입』된 힘겨운 미국의 발목을 뽑기 위한 해체 작업 (disengagement) 은 언어의 성찬이라 할 이만큼 공약에 공약을 낳고 있다.
그러나 『대결의 시대에서 협상의 시대』로 (69년 1월 취임사), 『「아시아」는 「아시아」인 손으로』 (69년 7월「괌」도 선언) , 그리고 『2·5 전쟁에서 1·5 전쟁론』 (세계교서)에 이르기까지 「닉슨·독트린」의 알맹이가 차차 여물어 가는데 불과하다. 2·5와 1·5의 군사 정책이란 큰 전쟁을 함수 1로 잡고 국지전이나 여타 분쟁은 0·5로 잡아 지칭한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영원한 적은 없다는 그의 협상 철학을 재천명 하고 미국의 군사 개입의 한계를 ①핵 보유국 (중-소)의 공격에만 핵 대응을 한다. ②『기타 방법』에 의한 공격은 당사국이 맡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기타 방법』은 내부 전복·유격전 등 이른바 해방 전쟁엔 개입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의 병력(인력)개입은 여간해서 없는 반면 경제적·군사적 (공수전·공중 지원) 원조는 아끼지 않겠다는 「닉슨·독트린」의 뼈대가 보다 선명히 떠올랐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역할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라고 못 박은 것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의무와 혜택』의 분담을 의미하는「파트너 쉽」(제휴)은 상호행동 (interaction)으로 구체화 돼야 한다는 수원국에 대한 「닉슨」정책의 경구가 번득이고있다.
이번 「세계 정책 교서」는 미국 대통령제도 운영에서 처음 있는 일일뿐 아니라 대외 정책 형성 및 추진 구조에 있어서의 중요한 전환을 재확인시키는 사건으로도 주목된다. 굳이 세계 교서의 유사형을 찾자면 민주당 정권 하에서 국방 장관의 대 의회 예산 보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세계 교서는 국방 장관을 제쳐놨을 뿐더러 「로저즈」국무가 「아프리카」 순방 중에 「키신저」안보 담당 보좌관, 「리처드슨」국무 차관,「패커드」국방 차관급에서 성안 발표함으로써 『누가「닉슨」을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닉슨」이 「닉슨」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미 국민에게 품게 했다. 대외 정책에 있어서의 국무 장관의 역할은 「덜레스」나 「러스크」시대를 고전적인 것으로 돌릴 만큼 퇴화 과정에 있는 성싶다. <최규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