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재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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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9년은 『하이재킹의 해』로 기록할만 하다. 정월부터 12월에 이르기까지 이 지상에선 하이재킹이 그치지 않았다. 지난 신정 벽두엔 그리스에서 올림픽 항공사 소속 여객기를 납치, 카이로에서 착륙시켰었다. 이때의 승객은 무려 1백3명.
미국의 여객기가 「쿠바」에 내려앉는 일은 아예 셈 수에 들어 있지도 않다. 그만큼 「월례행사」가 되다시피 빈발하고 있다. 쿠바는 바로 미국의 「코밑의 수염」에 해당하는 거리에 있다. 그밖에 커다란 사건만도 11건이나 기록됐다.
어느 사건이나 한가지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범인의 성분이다. 대개는 공산주의자가 그 주모자로 등장하고 있다. 「카이로」로 「그리스」여객기를 안내했던 사건의 주인공도 바로 「그리스」의 한 공산계 청년이었다. 지난 10월19일 2명의 동독인이 폴란드 비행기를 납치했던 일도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정치적 망명길을 그런 식으로 찾는 것이다. 이것은 굳이 사상과는 상관없다. 다만 영웅심에 도취된 청년들의 발작이다. 영웅심과 열등의식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불과 종이 한장 사이이다.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하나의 탈출구로 사람들은 영웅심에 도취하기 쉽다. 결국 비행기 탈위와 같은 사건을 공모하는 것은 그런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광적인 소행이다.
열등의식을 자극하는 동기는 현대사회에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양극의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이것은 한 개인과의 사이에서, 사회와 그 성원 사이에서, 사회와 사회사이에서, 국가와 국가사이에서…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중동지역에서 여객기의 「하이재킹」경쟁(?)이 일어났던 것도 물론 그런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눈은 눈으로, 이빨은 이빨로』하는 적개심·증오심의 작열은 서로의 여객기를 끌고 당기는 납치극을 연출시켰다.
이번 KAL기 납북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은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비행기가 강제 착륙당한 곳이 북괴의 의덕이라는 사실이다. 범인이 빨갱이인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 그와 같은 불순분자가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던 것부터가 불쾌하다. 더구나 휴전선 변방을 나는 여객기에서 일어난 일이니 말이다.
북괴의 비인도적 해적행위는 충분히 국제사회에 알려져야 할 것이다. 납북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스스로의 주변을 둘러보는 반성도 곁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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