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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민주화·번영의 바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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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경수
국방부 국제정책차장
육군준장

미국 언론인 칼 로완은 1966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 워싱턴 소재 한국전쟁 기념비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구대로 지금 우리 사회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60여 년 전 수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양손에 아이들의 손, 머리엔 짐을 인 피란길 아낙네부터 무명용사·학도병에 이르기까지 희생의 경중을 따질 순 없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나라의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60년 전 이 나라에 왔던 미군 장병은 북한의 침략을 막아냈고 오늘날에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올해 환갑을 맞이했다. 우리는 6·25전쟁과 지난 60여 년간 미군이 보여준 희생과 헌신을 새롭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늦게나마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해 이들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다행스럽다. 시간이 지나면 상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동맹 60년 만에 제정된 의미 있는 이 상에는 이에 걸맞은 명칭이 필요했다. 한·미 동맹에 헌신한 미국 측 인사에게 수여한다는 점과 한·미 동맹이 6·25전쟁을 통해 맺어진 혈맹임을 고려할 때 미군이 존경하는 전쟁 영웅이자 한·미 동맹 발전에 기여한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주한미군 장병은 6·25전쟁과 한·미 동맹을 상기하며 “제너럴 팩(백선엽 장군)”을 서슴없이 지명한다.

 미군들에게 백 장군은 어떠한 인물인가? 2004년 9월 27일 미 육군협회(AUSA) 행사장의 한 장면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백 장군은 참석한 모든 미군 장성과 세계 각국 무관들의 기립박수 속에서 천천히 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AUSA가 주한미군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 수여하는 앤서니 비들 훈장을 받기 위해서다. 수여식에서 AUSA 회장인 설리번 예비역 대장은 백 장군이 6·25전쟁 다부동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우리는 여기서 더 이상 후퇴할 장소가 없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저 미군을 보라! 저들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만일 후퇴하거든 너희가 나를 쏴라.”

 미 장성들의 박수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날 AUSA 한국지부장이 “백 장군과 이야기하는 것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언급했던 것도 이러한 미군들의 존경심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백 장군은 6·25전쟁의 영웅을 넘어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백 장군의 저서 『부산에서 판문점까지』는 영어로 번역돼 미군의 필독서가 됐다. 역대 연합사 사령관을 포함한 주한미군 주요 장성들은 한국에 부임하면 제일 먼저 백 장군을 찾아뵙는다. 주한미군은 이미 리더십이 우수한 카투사를 대상으로 ‘백선엽 리더십상’을 수여하고 있다. 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 싸우며 외쳤던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는 한미연합사 구호로 사용되고 있다. 2004년엔 노래로도 작곡돼 한·미 장병이 함께 부르고 있다. 동맹을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미군들이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의 이름이 걸린 한·미동맹상을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6·25전쟁과 한·미 동맹에 기여한 미국 측 인사에게 수여하게 된 데 긍지를 느낀다. 이 상은 앞으로 한·미 동맹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사람이 고마움을 느꼈어야 할 이들에게 이제라도 감사를 표시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신경수 국방부 국제정책차장 육군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