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토론방] 10만원권 화폐 발행 시기상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현 시점에서 화폐단위를 절하할 경우 폐단이 많다.

첫째, 아직도 투명하지 않은 정치자금의 관행이나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폐단위 절하를 통한 고액권화는 뇌물이나 투명하지 않은 거래의 단위를 고액화시키는 사회적 부패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또한 서민들은 수표에 배서함으로써 금융실명제를 지키는 데 불편이 없으며, 요즘은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현금 보유의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다.

수표 발행과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고액 화폐 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가 불투명해서 생기는 정치.경제적 비용을 감안하면 오히려 수표 관련 비용이 훨씬 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화폐단위 절하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새 지폐.주화를 찍어내야 하고, 자동판매기와 컴퓨터 프로그램, 회계.전표 양식 등도 모조리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수백억원대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셋째,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환율단위를 줄인다고 원화가 강세 통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 신인도나 대외이미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넷째, 화폐단위 절하는 돈 씀씀이를 크게 하기 때문에 물가상승 우려가 있다는 심리적 동인 때문에 지가 앙등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는 최근의 충청권의 행정수도 이전과 맞물려 다시금 지가대란을 불러올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국제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