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개스 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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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벽에 귀가한 남편은 담을 넘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그날따라 평상시 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왔던 남편은 대문을 흔들고 고함을 지르다못해 키가 넘는「블록」담을 넘었고, 드디어는 빈사 지경에 이른 나를 구출했던 것이다.
내가 의식을 차린 것은 12시간이 지난 그날오후였다.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데는 1주일이 걸렸었다.
5년전의 일이다. 신혼초였다. 말로만 들었고 신문지상에서나 보던 연탄「개스」에 남 아닌 내가 중독되었던 것이다. 만약 남편의 귀가시간이 30분만 더 늦었어도 나는 이미 목숨을 잃었거나 살았더리도 뇌 기능에 이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던 걸로 기억된다.
이를테면 나는 살인「개스」의 살인음모에 걸렸다가 살아난 행운아다. 그날 새벽 남편의 귀가시간이 평소보다 일렀던 것을 나는 천우신조라고 믿고 있다. 지금도 남편은 깜깜한 새벽녘에 신부를 동에 업은채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일을 가끔 내게 상기시켜 준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신문지상에는 연탄「개스」로 인한 인명사고를 알리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초야에 죽어간 눈물겨운 부부의 이야기도 있다. 여관방에서 객사한 억울한 여행자도 있다. 연탄「개스」에 중독되었다가 목숨은 건졌으나 후유증 때문에 수삼년을 고생,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어간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비극도 있다.
지금 이 순간「아폴로」12호의 우주인들은 사상 두 번째의 달 정복을 이루고 지구로 귀환하는 중이라고 한다. 인류의 지혜와 노력이 개선하는 장엄한 모습을 보드하고 축복하는 것으로 한국의 신문도 가득차 있다.
그런데 그 한구석엔-어느 한국의 일가족 8명이 연탄「개스」에 중독 사망했다는 슬픈 현실도 염치없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현실도 있다.
5년 전에 내 목숨을 뺏으려했던 이른바「안방의 사신 (死神) 」살인「개스」를 오늘까지도 내가 모시고 (?)살고 있다는 슬픈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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