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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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개성공단을 다시 가동하기 위한 남북회담이 계속 공전하고 있다. 그제 다섯 번째 회담이 있었지만 남북 양측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큰 것으로 전해진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기업인들이 남아 있던 원자재와 생산품, 일부 기자재를 반출하는 등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의 성과는 있었다. 또 양측이 개성공단의 폐쇄보다는 재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쟁점의 핵심은 개성공단의 일방적인 운영 중단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문제다. 터무니없이 한·미 합동군사연습 등을 이유로 북측이 걸핏하면 공단 운영을 파행시키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남측의 입장을 북측이 수용하지 않고 있다.

 예전에도 북한은 몇 차례 공단 운영을 제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공단 근로자 5만3000여 명을 한꺼번에 철수시킴으로써 사실상 공단을 폐쇄한 적은 처음이다. 이로 인해 개성에 공장을 둔 남측 기업 123곳은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제품을 주문 받아 생산·납품하고 대금을 받음으로써 이익을 남기는 것이 기업활동의 전부다. 그런데 이 활동이 갑작스럽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기업이 주문자로부터 클레임을 당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예전에도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지만 이번과 비교하면 그래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번 일은 최악이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북한 당국의 일방적 조치로 인해 언제든지 안정적 운영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기업도 개성공단에서 생산활동을 재개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북한은 이런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공단 운영을 위협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을 해도 이번 일을 겪은 기업들은 공단에 남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이미 막대한 투자를 한 탓에 본전이라도 찾겠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동을 재개할 기업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새로 투자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오히려 투자 설비의 감가상각이 완료되는 시점엔 아예 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공단의 재개를 진정 원한다면 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남측의 재발방지책 요구는 북측의 ‘버릇’을 고치기 위한 자존심 싸움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남북회담을 통해 확실한 재발방지책이 마련되고 그에 따라 상당기간 공단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모습이 있어야만 기업들이 다시 개성공단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바탕 위에서 공단의 국제화 등 새로운 발전 방안도 활발해질 수 있다. 나아가 핵문제의 진전 등으로 남북 간 신뢰가 쌓이면 개성공단은 당초 계획대로 2000만 평 규모의 공업도시로 키워나갈 수 있다. 또 북한에 절실히 필요한 외국 투자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한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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