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학생운동] 안희정 87년 반미청년회 조직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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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무책임한 사상이 아니었느냐"고 되묻는다면 곤란하다. 돌아보면 그렇지만,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생운동은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었다. 실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부와 달랐다. 숨막혔던 시절에 어렵사리 문제를 제기했던 학생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모든 사상의 원형질은 '휴머니즘'이다. 이것이 동학과 만나면 동학운동이 되고, 일본 제국주의와 만나면 독립운동이 됐다. 군사독재정권과 만난 19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나타났다.

당시 운동권이 사회주의로 쏠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라. 그때 민주화 운동은 바위 틈에서 힘겹게 생명을 뻗어가는 여린 싹이었다.

군사정권에 맞서 맨손으로 싸울 순 없었다. 투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적 가치였다. 어느 시대든지 새로운 세력이 기존 세력과 충돌할 땐 투구를 쓰고 싸우게 마련이다.

주체사상의 이론적인 장점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사상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운동권은 90년대에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이제 나는 북한이 반일 독립운동에 따른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본다. 계급 투쟁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는 관점도 폐기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시장경제가 더 강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바로잡습니다>

◇2월 17일자 5면 '운동권, 신주류로 뜬다'의 사진설명에서 박선원씨의 현직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에서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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