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수수료 인상 '감시자'가 왜 나서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 수수료 현실화’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당한 수수료 부과는 철저하게 시정돼야 하지만 금융권의 수익기반 확대를 위해 각종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금감원은 18일 “인상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없다”면서 한발 빼고 나섰다. “이를 빌미로 금융사들이 수수료를 부당하게 인상할 경우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란 경고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논란은 금감원이 자초한 면이 짙다. 무엇보다 은행과 시장이 알아서 챙겨야 할 가격 문제를 감시와 제재가 주업인 금감원의 수장이, 그것도 공개적으로 들고 나선 모양새부터가 영 어색했다는 지적이다. “감독원장이 감독이 아니라 (금융위원회가 해야 할)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감독원은 자제하고, 금융위는 분발하라”(민주당 김기식 의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무조건 올리자는 게 아니라 원가를 제대로 된 방식과 절차로 따져봐서 올릴 건 올리고 내릴 건 내리자는 취지”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수수료를 매겨 온 은행권에는 ‘양날의 칼’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 원장의 발언이 금융회사들의 수익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게 중심은 인상 쪽에 서 있다는 게 중론이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수수료 인상이 필요한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 서비스가 그렇다. 세무·재무 분야 전문가들이 동원되는 고가 서비스지만 은행들이 우량 고객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주는 증권사의 조사 분석 자료도 제대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서민과는 큰 관련 없는 상품들이니 상대적으로 손대기 쉬운 것들이다.

 시작부터 불거진 논란을 감안하면 수수료 인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명분은 물론 ‘은행 수익성 제고’라는 실리 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2011년 여론과 당국의 압박에 은행권은 일률적으로 송금·자동화기기(ATM) 수수료를 내렸다. 이듬해 전체 은행권의 수수료 수익 감소분은 전년 대비 2500억원가량이었다. 금감원 관계자 말대로 “은행별로 몫을 나누면 사실상 푼돈”이다. 수수료 인상으로 은행의 수익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수수료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당장 은행 최고경영자의 고액 연봉, 과잉 점포·인력 구조조정 등 비용부터 줄이라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어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나서 걱정할 정도로 최근 은행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불과 얼마 전 수수료를 내리라고 했다가, 다시 올리자고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