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는 지금 하나의거대한감옥,,|한국의 동생에보낸 망명주부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련군 「탱크」의「캐터필러」에 짓눌리고있는「체코」를 탈출,자유의 품에안긴 「아델카·로헤로바」여사(41)가한국에 살고있는 그녀의 남동생인 서울삼육대학학장「루돌프·E·클라임스」박사(37·한국명 구인서)에게 『자유를 찾은 기쁨』 의 소식을 전해 왔다.
「클라임스」박사는 24일하오 「캐나다」의「몬트리올」에서 방직공장 지배인으로 있는 형「아더·클라임스」씨(43)를 통해 갑작스런 편지를 받고 한동안 감격속에 젖어있었다.
『「체코」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다. 우리들은 자녀들의 장래를 의해 조국을 탈출하지않을수 없었다 』 이편지속엔 클라임스 박사의누이인「아델카·로헤로바」여사의짤막한「체코」로부터의 탈출소식이 적혀있었다.
소련군의「체코」침공1주년인 지난21일 소련군의 탄압에서벗어나 「오스트리아」에망명을 요청한 「미레크·로헬」씨(45)부부와 7명의 자녀들은「클라임스」박사의 매형·누이· 조카들이었던것.「클라임스」박사는 철의장막저편에서 일생을 통해 만나보지못하리라 생각했던 누이일가가 모두자유세계로 탈출했다는사연이 담긴 형의 편지를읽고 누이를 만날 꿈에부풀어있다.
「클라임스」박사자신은16세때인 1948년12윌24일 소련이 자유 「체코」에 붉은 발자국을 찍어놓았을때 지금 「캐나다」에있는 아버지「요한·클라임스」(당시50세), 형「아더」(당시22세)와자유를찾아 「캐나다」로 탈출했었다.
그당시 20세의 처녀였던 누이는 공군 대위였던 남편 「로헬」과 깊은사랑에 빠져 있었다. 가족들이 누이에게 『자유와 사랑중 하나를 선택하라』 고 요구, 결국 누이는 『사랑은 내 인생의전부이다』라고 주장하며「체코」에 그대로 남아있게 됐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미국「인디애나」주립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받은 「클라임스」박사가 삼육대학 학장으로 부임한지 10년, 자유세계로 망명한후 21년동안 누이의소식이 끊겨 꼭 누이일가가 죽은줄로만 알았다고 「클라임스」박사는 털어놨다.
『북한에 혈육을 남기고 월남하신분은 현재의 내심정을 이해할것 입니다.』형으로부터 온편지와 누이·조카등의 사진에서 눈길을 떼지않고하는 또렷 또렷한 「크라임스」박사의 한국말이다.
누이와 결혼당시「체코」군「파일러트」대위였던 「로헬」씨는 처가일행이 망명하자 망명가족으로몰려「파일러트」를 그만두고회계사로서 근근 연명했었다고.
「클라임스」박사는 27일 우선 일본에서 누이가족을 형과 아버지가있는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일을 서두르겠다고한다.
「클라임스」박사가 「체코」출신이라는것은 작년초「체코」자유화운동이일어났을때부터 여러번 중앙일보지상에올랐으며(본보68년3월19일자등3회게재)그자신은퍽 괴로왔다고 했다. 이사실이 「체코」에까지 알려져 누이가족이 해를 입지않을까 염려해서 였단다.
요즘 불붙고있는「체코」자유화운동에 대해서 『소련군의 침공은20세기의 최대의 범죄요과오』라고강조한「크」박사는 『훌륭한 사람들이 「체코」를떠나는것은 개인적으로는반가운 일이나 「체코」장래에대해선 슬픈일이다』라고 조국 「체코」의염려도 잊지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