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훈계' 이현호 선수, 일진 모아달라 경찰에 요청…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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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양천경찰서가 이현호 선수를 청소년 선도대사로 임명하며 제작한 이미지 컷. [사진 양천경찰서]

“경찰에 각 학교 ‘일진’만 모아달라고 했다.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일진’ 친구들에게 운동으로 흘리는 땀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

 서울 양천경찰서 청소년 선도대사로 변신한 프로농구 선수 이현호(33·전자랜드)는 8일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 선수는 불량 청소년과 시비에 휘말린 게 계기가 돼 청소년 선도대사가 됐다. 그는 지난 5월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던 청소년들을 훈계하다가 한 명의 머리를 때려 입건됐다. 양천경찰서는 폭행은 잘못이지만 훈계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했고, 그 정도가 사회 상규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즉심에 넘겼다. 법원도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도리어 청소년의 비행을 수수방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양천경찰서는 지난달 10일 그를 청소년 선도대사로 임명했다.

 이 선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중학생들이 선생님은 물론 경찰관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 할머니가 담배꽁초를 버린 20대를 훈계하다가 맞아 사망했다는 사건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내 자녀가 보복당할까 걱정돼 이사 갈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청소년 선도에 더 힘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동급생을 괴롭히는 6학년과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다. 중1 때는 친형과 시비가 붙은 형을 때려서 병원비를 3000만원이나 물어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농구공을 안겨줬다. 농구를 하면서 규칙을 익히고, 학생의 본분도 알게 됐다. 지금 동급생을 괴롭히는 일진도 농구를 조금만 하면 기진맥진해지고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지도 알게 될 거다. 땀을 흘리면 느끼는 게 있다.” 이 선수는 오는 15일과 18일 양천구 관내 양정중과 백암고를 방문해 이 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줄 계획이다. 양천경찰서는 청소년을 위한 이현호 농구교실 운영도 검토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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