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개혁 대상 국정원에 개혁 맡길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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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도 국가정보원의 개혁을 주문했다.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거 정권부터 국정원은 많은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이번 기회에 국정원도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며 “대북 정보 기능을 강화하고 사이버테러 등에 대응하고 경제안보를 지키는 데 전념을 다하도록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은 스스로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번 발언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뒤엉킨, 이른바 ‘국정원 국면’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내놓은 세 번째 입장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국정원이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국민 앞에서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고 다음 날 대화록이 공개된 뒤엔 “우리의 북방한계선(NLL)은 수많은 젊은이가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국정원의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은 국정원 개혁론으로 결집돼 갔다. 박 대통령이 또 입을 연 이유일 게다.

 저간 사정이야 어떻든 박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강조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방향도 원론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국정원이 사실상 대통령의 최고 보좌기관이란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정원 개혁에 힘이 실리는 효과도 있을 게다.

 그렇더라도 정쟁(政爭) 에너지가 곧바로 개혁 에너지로 전환될지 의문이다. 어제 발언이 오히려 정쟁 연료로 소진될 가능성이 커서다. 특히 개혁 대상인 국정원을 개혁안을 만드는 개혁 주체로 지목한 게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댓글 사건이야 과거 정부의 일이라고 쳐도 대화록 공개는 박 대통령이 임명한 남재준 국정원장에 의해 벌어졌다. 외신에서도 국정원을 향해 ‘유출자(leaker)’니 ‘정치적 선동가(provocateur)’란 표현을 쓸 정도로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야당에선 남 원장의 즉각 해임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국정원이 만든 개혁안이 믿음을 주겠는가. 개혁안을 실천한다고 누가 믿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란 비난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정쟁의 중단이 아닌 정쟁의 지속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국정원엔 외부의 충격이 필요하다. 현재 권력에 충성하고 미래 권력에 줄대온 고질(痼疾)을 치유하기 위해선 말이다. 박 대통령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별도의 중립적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 국회 차원의 논의에 힘을 보태는 것도 방법이다. 국정원법을 개정하려면 어차피 국회에서 결론내야 하지 않나.

 박 대통령은 어제 “대선 6개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서 유감”이란 말도 했다. 진정 유감인 건 국민이다. 박 대통령은 제3자가 아닌 당사자란 인식 속에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 그게 국정원을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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