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강화보다 세제 고쳐야 증세 힘들면 복지 공약 축소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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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04면

경제 전문가들은 세무조사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탈세 방지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세수 확보를 위한 세무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흐름과 세수를 고려해 돈이 필요하면 세제를 고쳐야지 세무조사만 강화하는 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 견해

한국재정학회 현진권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세무조사의 강도가 세졌느냐 여부를 따지기보다 납세자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도 공식적으론 ‘탈세 방지’를 조사 이유로 내세우지만 대다수 국민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세수 확보의 수단으로 동원됐다고 인식하게 되면 세무조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장을 지낸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세무조사는 남용되면 오히려 힘을 잃어버린다”며 “세수 확보를 위해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성실한 납세자에 대한 조사는 필요하지만 경기가 좋아지고 기업이 살아야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만큼 기업을 육성하는 세무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면 증세를 해야 하며, 그게 어렵다면 공약 축소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꼽힌 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원장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대통령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135조원의 40%를 마련하겠다는 게 바이블처럼 돼 있는데 이걸 지키려면 세무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는 무리한 것으로 이 바이블을 그냥 둘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도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것인데 정치권에서는 마치 공짜인 것처럼 말한다”며 “복지를 위해선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국민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권은 아직 증세를 말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도 재원이 여전히 부족할 때는 국민적인 대타협을 통해 증세를 본격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미 증세는 시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과세ㆍ감면 축소가 세금을 늘리는 것인데, 세율 인상이 없다고 증세가 아니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정권 출범 초기라 반발이 상당할 세율 인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세수 목표를 다 채우기 어렵다. 공채를 발행해 충당해야 할 것이다. 내년 이후에 복지 프로그램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이를 1년쯤 해 보면 증세 없이는 힘들다는 걸 국민도 알게 될 것이다. 이때 가서 복지 확대를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축소하든지, 세금을 올리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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