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고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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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도현(1961~) '고드름' 부분

고드름이여
어느 먼 나라에서 밤새 걸어왔는가
줄지어 고된 행군이었는가, 그리하여 지금은
그대 마디마디 발목뼈가 시린가
그대는 지붕을 타고 넘어 왜 마당에 한 발짝도 내려서지 않고
처마 끝에 그렇게 정지, 상태로 고요한가
고드름이여, 영 마땅찮았는가
이 세상이 이렇듯 추해져서 발도 디딜 수 없다는 말인가

하늘에서 흘러내리던 물도 망설일 때가 있다. 낮은 곳으로 계속 흘러내려 가야 하는가? 아니면 이대로 멈출 것인가? 고드름은 내려오던 물이 망설이는 모습이다. 망설임으로 고드름은 자라고 검(劍)처럼 끝이 뾰족해진다. 그런가하면 나무들도 망설일 때가 있다.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가야 하는가? 나무들은 겨울에 특히 망설인다. 벌거벗은 채 우두커니 묵상에 잠긴다. 나무들이 망설인 흔적, 그것이 나이테다. 온대지방에서의 우화(寓話).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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