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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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살인진드기로 인한 감염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살인진드기가 무섭다고 방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오히려 캠핑족이 증가해 아웃도어 용품 업체가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한다.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다소 방해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할 일은 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이처럼 파리의 애벌레를 가리키는 말이 ‘구데기’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구더기’가 바른말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건데기’가 있다. “나는 국물만 먹고 건데기는 남기는 편이다” “말할 건데기도 없다” “계약을 성사시키려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나에게는 아무 건데기도 생긴 게 없다”처럼 ‘음식 속에 들어 있는 국물 이외의 재료’나 ‘내세울 만한 일의 내용이나 근거’ ‘노력을 들인 대가로 들어오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건데기’를 쓰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건더기’가 바른말이다.

 이 같은 현상은 ‘ㅣ’ 모음 역행동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ㅣ’ 모음 역행동화는 앞에 오는 ‘ㅏ, ㅓ, ㅜ, ㅗ’가 뒤에 오는 ‘ㅣ’에 동화돼 ‘ㅐ, ㅔ, ㅞ, ㅙ’로 바뀌는 현상이다.

 ‘구데기’와 ‘건데기’의 경우 뒤에 오는 ‘기’(ㅣ)의 영향을 받아 앞에 오는 ‘더’(ㅓ)가 ‘데’(ㅔ)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결과는 대부분 표준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성철 스님은 평생 누데기 장삼을 입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셨다” “책 한 무데기를 짊어진 아이들의 어깨는 누구 할 것 없이 축 처져 있었다” 등에서처럼 ‘누데기’와 ‘무데기’란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 역시 ‘ㅣ’ 모음 역행동화의 영향으로 ‘누더기’ ‘무더기’가 ‘누데기’ ‘무데기’로 바뀐 것이다. ‘누데기’ ‘무데기’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지랭이’ ‘가랭이’ ‘덤테기’ ‘곰팽이’ ‘놈팽이’ 등도 각각 ‘아지랑이’ ‘가랑이’ ‘덤터기’ ‘곰팡이’ ‘놈팡이’가 ‘ㅣ’ 모음 역행동화를 일으킨 것으로,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는 말들이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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