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에 굴건은 꼴불견|고려례 살려 백일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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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가 이제까지 시행하여온 장례는 봉건주의 시대이던 이씨왕조 5백년 동안에 지배자 계급이던 문무양반사회에서 지켜온 주자가례를 바탕으로하여 이뤄진 것이었다. 이씨 왕조에있어서는 사회계급을 양반·중인·상민·천인의 넷으로 나누어 오직 권력을 잡을수 있었던 양반계급에서만 주자가례에 따라 3년거상법과 가묘제와 사대봉사법을 준행하게하고 그 아래의 피지배 계급에서는 이에 따르지 못하게 하였었다.
양반계급에서는 부모가 죽으면 삼베로 만든 굴건 제복을 입고 한달후에야 장례를 지내며,그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동안 외로이 살며, 소상대상을 성대히 치려야만 효자라는 칭송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러한 상례때에는 일가친척은 물론 한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그집에 모여들어 여러날 동안 먹고 마시고 하였기 때문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산을 탕진하는 일까지도 있었다. 그뿐더러 양반계급에서는 왕가의 상례를 미끼로 하여 당파싸움을 격화시켜 국운을 쇠약하게 했다.
이러한 이씨왕조시대에 시행된 양반계급의 상례가 그왕조가 없어진 후에는 일반민중의 그것으로 보급되어 경제적으로 유족한 집안에서는 거의 그상례를 따르는 기풍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생활양식도 도입되어 오늘까지의 우리 상례복장에는 양복에 굴건을 쓰는 괴상한 모습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구래의 허례허식과 폐풍을 없애고 상례를 오늘의 우리 현실에 맞게끔 고쳐 합리화하자는데 이번에 공포된 가정의례준칙의 근본정신이있는 것이다.
특히 탈상을 백일로 국한하게 된 것은 주자가례를 준행하기 이전의 고려조에 있어서 백일로 탈상하게 한 우리고례를 다시 살리는 한편 현대생활에 거리낌이 없게 하자는데 그 뜻이있는 것이다. 유홍렬<성대교수·가정의례준칙 심의위 상임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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