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위장계좌에 1억달러 입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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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의 대북 비밀 송금 의혹과 관련, 2000년 6월 9일 김재수 당시 현대 구조조정본부장 겸 현대건설 관리본부장(현 그룹 경영기획팀 사장)이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지시해 영국 런던 현지은행의 위장 계좌에 1억달러를 입금시켰던 것으로 드러났다.

돈이 입금된 계좌는 현대건설의 아랍에미리트(UAE) 현지법인인 '현대 알카파지' 명의로 개설됐으나 정작 현대 알카파지에선 그룹 측이 그런 계좌를 개설한 사실조차 몰랐다.

현대건설 고위 관계자는 11일 본지 기자와 만나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이 돈은 현대건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최근 현대전자 영국법인이 현대건설을 상대로 1억달러를 갚으라고 소송을 냈지만 우리는 돈을 갚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1억달러는 또한 당시 현대전자 미국.일본 현지법인에서 급하게 마련해 런던으로 송금한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이 같은 증언은 지금까지 현대 측이 말해온 "현대전자 스코틀랜드 공장 매각 대금 1억달러를 현대건설의 페이퍼 컴퍼니인 현대 알카파지에 송금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당시 현대건설 대리로 현대 알카파지의 공동 대표였던 徐모(35.현 현대건설 과장)씨도 11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때 1억달러가 우리 명의의 런던 계좌로 입금됐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현대 측은 그간 현대 알카파지가 두바이의 페이퍼 컴퍼니라고 설명해 왔으나, 본지 확인 결과 알카파지는 활발한 수주 활동을 하던 현대건설의 현지법인이었음이 밝혀졌다.

현대전자는 2001년도 사업보고서에서 2000년 6월 당시 1억달러를 현대 알카파지에 빌려준 것으로 기록한 후 그해 연말 장부상 손실로 처리해 놓았다. 그리곤 알카파지마저 뚜렷한 이유없이 법적 청산을 해버렸다.

이처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1억달러가 '증발'했고, 따라서 그간 이 돈이 결국 북한으로 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 돈은 현대상선이 마카오를 통해 북한에 송금한 2억달러와는 별개의 돈이다.

김재수 사장은 이에 대해 11일 전화 통화에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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