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강제 연행 문건 고노담화 때 이미 확보 … 아베 정부, 알고도 은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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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1차 아베 신조 내각(2006~2007년)이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자료의 존재를 알고도 2007년 ‘강제연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은 없다’는 취지의 정부 입장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공산당 아카미네 세이켄(赤嶺政賢) 중의원 의원이 최근 아베 내각으로부터 제출받은 답변서에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공산당이 홈페이지에서 공개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고노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2007년 3월 “정부가 발견한 자료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같은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 는 정부 답변서를 결정했다. 고노담화의 취지를 사실상 뒤집은 것으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최근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도 이 답변서를 근거로 “강제 동원은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카미네 의원은 지난 10일 2007년 정부 답변서 내용 중 ‘정부가 발견한 자료’의 범위가 무엇인지, ‘바타비아 임시군법회의 기록’이 그 범위에 포함되는지를 질의했다. ‘바타비아 임시군법회의’는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억류 중이던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로 매춘에 동원한 것을 단죄하기 위해 전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서 열린 전범 군사재판이다. 이 재판 기록엔 “(일본군이) 매춘을 시킬 목적으로 (여성들을) 위안소로 연행하고, 숙박시키고, 협박하면서 매춘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카미네 의원의 질의는 한마디로 “위안부가 강제로 동원된 사실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바타비아 군법회의 자료가 있었음에도 왜 2007년 답변서에서 이런 자료의 존재를 부인했느냐. 잘못된 2007년의 답변서를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베 내각은 아카미네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각의에서 결정해 지난 18일 국회에 제출했다. 답변서는 ‘바타비아 임시군법회의 기록’이 1993년 고노담화 발표 당시의 정부 조사 때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 2007년 정부 답변서 속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도 이 기록이 포함돼 있다고 시인했다. ‘바타비아 기록’의 존재를 알고도 ‘정부가 발견한 자료엔 강제 연행의 기술은 없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답변서는 그러나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공산당과 아카미네 의원 측에 따르면 “종군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 포함돼 있다”고 일본 정부가 시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카미네 의원은 “2007년 답변서가 잘못됐음이 명백해진 만큼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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