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돌다 만나는 소박한 식당 … 살가운 정이 조미료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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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43) 사진작가

북촌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도 아직 옛날식의 정감 어린 정서가 남아 있는 곳이다. 흑백사진관 물나무의 김현식 대표를 잡아 끈 것도 이런 북촌 특유의 정서였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건 2006년이다. 막연히 전원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우연히 들른 계동에서 마음에 쏙 드는 한옥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정해진 인연이었는지 마침 이 집 주소가 아내의 본적지였다.

 그렇게 북촌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사 전부터 북촌을 좋아하고 자주 찾았던 김 대표는 살면 살수록 더 이곳에 반한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던 여유로움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서울에서 북촌 주민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 모두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챙겨 준단다. 골목 골목 숨어있는 매장에서 마주치는 사람 모두 어느새 친한 형님이자 동생이 됐다. 원래 이곳 식당들은 동네 주민을 위해 생긴 소박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그런 평범하면서도 익숙한 음식을 내놓는 곳 말이다.

 그러나 외지 사람 발길이 늘면서 북촌 식당도 변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으려면 서촌이나 종로 쪽에 나가야 했는데 외지 사람이 많이 찾아오면서 식당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스테이크 전문점부터 이탈리안 레스토랑까지 메뉴가 다양해졌다. 대부분 맛도 뛰어난 집들이다. 그러나 김 대표 발길을 끄는 곳은 여전히 소박한 식당이다.

 그는 “서양 음식이나 자극적인 맛을 내 사람을 현혹하는 식당은 굳이 북촌이 아니어도 서울 곳곳에 있지 않느냐”며 “외지에서 굳이 북촌에 찾아온다는 건 결국 북촌이 지닌 600년 역사와 이곳만의 정서를 즐기려는 것일 테니 그런 식당을 주로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북촌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맛집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또 한편으론 북촌이 가로수길이나 이태원처럼 트렌드만 좇는 곳으로 변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김현식(43) 대표는 20년간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다. 2011년 초 계동에 흑백사진관 물나무를 열었다. 갤러리 ‘마당’, 카페 ‘다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옥에서 우리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근대화상회를 시작했다. 흑백 필름이나 가마솥에 직접 볶아내는 원두 등 그가 운영하는 곳들 모두 아날로그적 감성이 숨쉰다. 북촌에 일부러 터를 잡은 것도 이런 것들과 잘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정리=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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