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리길 구경오고 | 할일없이 왔다갔다 | 사고나자 방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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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처음 전차가 생겼을때는 장안의명물, 시골 할아버지들이 서울에 전차를 구경한다고 백리, 2백리를 걸어 상경, 전차길옆에는 항상수백명의 구경꾼이 늘어서있었다. 전차가 생겼을때의 요금은 2전5리에서 서3전5리, 1909년대의 전차요금은 30전. 표한장이면 바꿔탈수도있었지만 30전이면 막걸리가 5, 6되나되는 비싼값. 할일없이전차를 타고 왔다갔다하는한량도많았다.
이렇게 사랑받던 전차도 수난이 있었다.
전차가 운행된지 2년째인 1900년5월 동대문밖에서 5살 어린이가 전차에치여죽자 시민들이 분노, 전차에 돌을던지다 못해 길을 막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45년해방되기까지 전차는 시민의 유일한 발로 전성기를맞아 운영회사인「경전」은 치부를했고 이큰 이권을가진 댓가로부민관을(현 국회의사당)지어 헌납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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