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도로 위 긴급차량 '나 몰라라'하는 승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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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도 화재, 구조, 구급 출동건수가 300만 건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위험요소가 가득 찬 도로에서 소방차량은 경광등과 사이렌, 그리고 운전자와 동승인원의 눈과 귀를 가지고 긴급출동에 임한다.

언제, 어디서 긴급운행차량 앞을 끼어들지 모르는 차량으로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머리가 삐쭉삐쭉 서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직업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방관이다. ‘구급대원들이 5분만 일찍 병원에 도착했어도’, ‘화재진압요원들이 5분만 일찍 화재현장에 도착했어도’ 라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소방관들은 수 많은 어려움을 뒤로 한 채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이처럼 긴박한 출동 상황을 겪다 보면 마음이 착잡할 때가 많다. 주위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만을 바쁘게 가는 차량을 보면, 속이 타는 것은 애타게 소방관을 기다리는 사람과 출동중인 소방관뿐인 것 같다.

한재연 천안서북소방서 성환119안전센터 지방소방사

나름 이유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운전 미숙이나, 자동차 내부 방음장치 및 오디오 소리로 인해 긴급차량을 보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알고도 피해주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이를 악용하는 차량이 눈에 자주 띈다. 이들 때문에 대부분의 긴급차량 양보의무를 성실히 지켜준 운전자의 선의가 무의미하게 되어 버리는 일들이 많다. 긴급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자신만을 생각하는 많은 위반차량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결국 도로교통법에 ‘긴급차량 양보의무 위반차량 단속’이라는 조항이 생기고 단속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의 상태가 악화되고 집이 다 타버린 다음에야 이를 잘못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시간이 지체된 후에는 안타까움만 남을 뿐이다.

 운전자들이 차 오디오 볼륨을 조금만 줄이고, 주위 번쩍임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긴급차량에 양보하는 마음을 조금만 키운다면 소방관의 위험은 줄어들고 위급한 상황에 처한 우리 이웃에게 조금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도로에서 긴급 차량을 만났을 경우 조금만 양보하면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한재연 천안서북소방서 성환119안전센터 지방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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