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사냥 비결은 스피드보다 급가속·급제동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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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냥꾼’.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맹수 치타의 별명이다. 실제로 치타는 1초에 최고 29m를 달린다. 시속 104㎞에 해당하는 속도다. 말(초속 19m)·그레이하운드(사냥개, 초속 18m) 등 지상의 어떤 동물보다도 빠르다. 하지만 치타의 사냥 실력은 빠른 속도보다는 순간적으로 가속과 감속을 하고 운동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한 몸놀림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왕립수의대 A M 윌슨 교수팀은 13일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에서 야생 치타 다섯 마리의 사냥 과정을 17개월간 추적 조사한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치타 암컷 세 마리, 수컷 두 마리에게 특수 제작한 목걸이를 씌웠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관성측정장치(IMU)가 장착된 목걸이였다. 연구팀은 이 장치를 이용해 치타들이 실제 사냥을 할 때 몸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치타를 비롯한 동물의 달리기 속도는 대부분 인공적인 환경에서 측정됐다. 가짜 먹이로 동물을 유혹해 직선주로를 달리게 한 뒤 속도를 재는 방식이었다. 반면 윌슨 교수팀은 실제 치타가 살고 있는 곳에서 실제 사냥할 때 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알려져 있는 것과 달랐다. 총 367회에 걸친 사냥에서 실제 치타가 낸 최고 속도는 초속 25.9m(시속 93㎞)였다. 하지만 딱 한 차례뿐이었고, 평균 최고속도는 초속 14m 안팎에 머물렀다. 그나마 사냥 중엔 1~2초 정도밖에 지속하지 않았다. 사냥 때 치타가 초속 20m 이상으로 달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면 치타의 순간 가속·감속 능력은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보다 더 빼어났다. 치타는 한 걸음에 속도를 초속 3m씩 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초속 4m씩 줄이기도 했다. 이는 말의 두 배 이상 되는 수치다. 이런 폭발적인 가속·감속 능력은 몸무게의 45%를 차지하는 근육에서 나오는 걸로 분석됐다. 치타의 가속 때 걸음당 평균 근력은 ㎏당 100W(와트)가 넘었다. 이에 비해 그레이하운드는 60W, 말은 30W 수준이다. 100m 세계기록(9초58)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는 25W 정도에 그쳤다.

 연구팀은 특히 치타의 감속 능력에 주목했다. 치타의 평균 사냥 성공률은 26% 정도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냥꾼도 네 번에 세 번은 사냥감을 놓친 것이다. 사냥에 성공했을 때 치타가 기록한 평균 감속도(-7.5m/S₂)는 실패했을 때(-5.5m/S₂)보다 훨씬 앞섰다. 반면 가속도는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큰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치타의 사냥이 성공하느냐 여부는 (사냥감을 낚아채는) 마지막 순간에 달렸다”며 “이때 중요한 것은 달리기 실력이 아니라 이리저리 도망가는 사냥감을 쫓아 급히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틀 수 있는 능력”이라고 분석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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