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진지하고 실질적인 남북 대화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남북이 어제 판문점의 실무접촉을 통해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한다는 데 합의했다. 당초 회담 장소나 수준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일부 있었으나 북한이 신속히 우리 측 제의를 받아들였다.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적극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성급한 기대를 거는 건 금물이다. 과거에도 남북 대화는 수없는 중단과 파행을 겪었다. 앞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다뤄질 의제에 따라, 그리고 북측이 얼마나 진정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당장 논의할 것으로 보이는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사안들이다.

 물론 대화에 나선 북한의 태도 변화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진정성에 확신을 갖기는 어려운 상태다. 국민의 뇌리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들을 모조리 벌초해버리겠다”던 살기등등한 북한의 위협이 생생하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우리 측에 이런 시각이 있다는 사실을 북한도 충분히 알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대화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대남 전술의 연장선이 아니라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나서겠다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리 측도 한판승을 거두겠다는 욕심은 버리는 게 좋다. 협상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야 하는 협력사업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우리 정치권에서 섣부른 기대가 잔뜩 부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 일각에선 남북 국회회담을 추진해야 한다고 나섰다.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흥분과잉이다. 이미 1985년 북한의 제의로 국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까지 해봤지만 한계가 뻔하다는 게 드러나지 않았나. 근본적으로 북한에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있기나 하나. 저조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남북 대화 국면에서 곁불이라도 쬐어보려는 심산이라면 국민의 비웃음만 사고 만다. 또 우리끼리 이런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얕잡혀 보이기 십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