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서로 먹겠다고 아우성 … 어미는 순서를 알고 있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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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충남 논산 야촌리 한 주유소의 처마 밑, 2013. 6

저 멀리 엄마가 보입니다. 눈도 겨우 뜬 녀석들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먹이를 물고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어느 놈이 먼저랄 것도 없이 네 놈은 동시에 입을 한껏 벌립니다.

 “엄마, 나야 나. 내가 첫째야.” “아냐, 엄마. 형아는 어제도 많이 먹었는걸.” “엄마, 엄마. 엄마 없는 동안 형들이 나 밉다고 계속 괴롭혔어. 그러니 내가 먹어야 돼. 제발 날 줘.” “엄마, 나 막내. 제일 예쁜 막내가 나야 나. 엄마, 엄마.”

 저마다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잠시라도 입을 다물면 먹을 기회를 빼앗길까 봐 입을 다물지도 않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죠. 그래서 어미 제비는 원칙을 지킵니다. 오른쪽 녀석이 첫째였을까요? 이놈에게 먼저 먹이를 주고 다시 날아갑니다. 잠시 뒤 어미가 다시 날아왔는데도 첫째 놈은 전과 똑같이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사리 분별이 없는 어린 것들이니 이해를 하지만 아마 동생들한테는 엄청 욕을 먹을 겁니다. 이번엔 오른쪽 둘째 놈. 그렇게 어미는 하루 종일 날아다녔습니다. 1시간여를 왔다 갔다 하던 어미 제비는 제 배고픔에 지친 듯 집에 들어가 앉습니다. 네 놈은 아직 배고프다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돌아가며 입을 벌리고 악악거립니다. 어미는 새끼들과 몇 번 입맞춤하다 잠이 듭니다. 이놈들은 언제 알까요? 어미가 너무 주린 나머지 날 힘조차 없다는 것을요. 잠시 뒤 어미가 일어납니다. 잠깐 눈만 붙였는데도 어디서 힘이 났는지 어미는 다시 먹이를 찾아 날아갑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생각나는 만큼 눈물이 납니다. 사랑합니다.

글·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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