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조선 문인 9인의 고백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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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직 독서뿐
정민 지음, 김영사
404쪽, 1만3000원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독서는 밥 먹고, 옷 입는 것과 같다지 않은가. 그래서 중국 남북조시대의 안지추(顔之推)가 말했다. 천만금 재물보다 재주를 지니는 것이 낫고, 재주 중에 쉬우면서 귀하기로 독서만 한 게 없다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책을 집어들 수 없는 노릇이다. 책이 나무라면 우리는 울창한 숲에 있다. 책이 물이라면 가없는 바다에 떠있다. 숲에서 길을 잃으면 환상방황에 빠지고, 바다에선 표류하기 십상이다. 나뭇가지나 별자리로 방향을 가늠하는 재주나 나침반이 필요하다. 책으로 말하면 독서법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문인 9명의 문집과 서간에서 독서법이라 할만한 부분을 발췌, 자신의 견해를 붙여 소개한다. 허균·이익·양응수·안정복·홍대용·박지원·이덕무·홍석주·홍길주가 그들이다. 책 제목은 『오직 독서뿐』이지만, 내용으론 ‘독서의 왕도(王道)’ 쯤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은 “큰 나무를 쓰러뜨리려면 반드시 큰 도끼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큰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법. 약삭빠르게 빠른 길만 찾아서는 성취하기 힘들다. 낫으로는 잡초나 벨 뿐이니, 진득하게 책을 대하라는 애기다.

 이덕무 역시 “첫 권은 손때가 묻어 더럽다. 심지어 썩거나 떨어져 나가 읽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둘째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는 씻은 듯이 말끔하다”고 한탄했다. 현대인에게도 가슴이 뜨끔한 말이 아닌가.

 책 읽는 자세에도 법도가 있다. 홍대용은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높이면 기운이 빠지고, 눈을 놀리면 마음이 부산해지며, 몸을 흔들면 정신이 흩어진다”고 했다. 이른바 독서삼도(讀書三到)와도 맥이 통한다. 입과 눈과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어 글쓴이의 뜻을 헤아리다 보면, 무당이 접신하듯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메모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책을 읽다가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즉시 적어둬야 한다”고 했다. 깨달음은 섬광처럼 왔다가 간데없이 사라진다. 바로 이 짧은 순간이 큰 공부의 단초라는 것이다.

 나이에 따라 독서의 방법도 다르다. 양응수는 젊어서는 확산형, 나이가 들어서는 수렴형의 독서를 권했다. 중년이 지나서는 책을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조금씩 음미하고 사색하라는 것이다. 기력의 차이 때문이라지만, 지식습득보다 인생의 도리를 깨우치는 독서가 필요한 시기라는 뜻일 게다. 맹자도 도능독(徒能讀)을 경계했다. 그저 읽기만 한다는 뜻인데, 깨달음이 없으면 하나마나 한 독서란 얘기다.

 그나마도 책 읽는 이가 드문 게 요즘이다. ‘터치’만 하면 ‘솔루션’을 주는 인터넷시대에 ‘생각하는 사람’은 사라져간다. 그래서 오가는 말도 깊이가 없고 거친 것일까. 하루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와 닿는다.

 벌써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피서의 방법으론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게 으뜸이다. 게다가 개권유익(開卷有益), 책을 펴기만 해도 이롭다지 않은가.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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