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동방삭(東方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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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사에 '진황한무(秦皇漢武)'라는 말이 있다. 진시황제(秦始皇帝)와 한무제(漢武帝)를 일컫는 말이다. 두 황제는 대제국을 통치하고 흉노에 대항했던 강성한 중국의 상징적 황제였다.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격리시켰고, 한무제는 적극적인 원정을 통해 그들을 복속시키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위업보다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얻으려고 미신과 영약에 집착했던 몰락의 과정이 더 비슷했다.

진시황은 불로초에 목을 메 전 세계에 술사 등 탐험대를 파견했다. 이 중 대표적인 사람이 서복(徐福)이다. 그는 동방 해상의 봉래산(縫萊山)에 불로불사의 선인이 있으니 그에게 가 명약을 얻으면 불사(不死)의 몸을 얻을 수 있다고 황제를 현혹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신선의 명약을 얻어오지 못했다. 진시황은 실망했지만 서복은 말년에 일본에 건너가 신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의 신궁 옆에는 서복의 무덤이 있고 매년 그를 기리는 제사가 열린다. 전설과 역사가 혼합된 현장인 것이다.

한무제도 진시황 못지않게 불로장생의 꿈에 매달렸다. 진시황에게 서복이라는 방사가 있었다면 한무제에겐 동방삭이 있었다. 삼천갑자동방삭(三千甲子東方朔)으로 더 유명한 동방삭(東方朔)은 '객난(客難)'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 등의 작품을 남긴 실제 인물이었다.

동방삭의 이름 앞에 삼천갑자가 붙은 이유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유명한 게 불사의 영약을 가진 신인(神人)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갑자는 60년이니 삼천갑자는 18만년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불로장생했다는 것이다.

동방삭이 이렇게 설화와 역사의 혼합된 인물로 변하는 과정엔 한무제의 불로초에 대한 절실한 구애와 이를 구하려는 동방삭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동방삭은 세계 각지를 항해.탐험하고 '신이경(神異經)' '북황경(北荒經)'과 같은 탐험기를 남겼다. 동방삭의 이름에 불로의 삼천갑자가 덧붙여진 후 중국에선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동방삭의 이름으로 가탁(假託)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 동방삭이 세계 최초로 북극을 탐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가 남긴 탐험기의 묘사가 북극지역을 설명한다는 주장이다. 삼천갑자의 그의 이름을 빗댄 또 하나의 가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21세기에도 그의 이름이 불로장생하는 것 같아 관심을 끈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