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개성공단, 그 운명의 갈림길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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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동근
초대 개성공단 관리위원장

지난 10년 동안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이 있었으나 그래도 개성공단은 잘 유지돼 왔다. 그만큼 개성공단이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적 존재로서 남북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일궈 통일에 이르게 하는 실험장으로서 중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 개성공단은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간신히 연명하는 중환자와 다름없는 신세다. 남북 당국은 어느 누구도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흘러 자연사하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박근혜정부가 새로운 대북 정책을 시작도 하기 전에 북한은 우리 언론 보도와 한·미 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출입 차단과 개성공단 근로자 전면 철수라는 최악의 메뉴를 선택했다. 새 정부를 시험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이번 사태가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진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실천 사업이 영영 사라지게 된다.

 북한은 오랫동안 개혁·개방과 체제 유지 사이에서 숱한 고민을 해 온 것이 확실하다. 북한도 개방하면 잘사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개방과 체제 유지 사이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개성공단과 이번 사태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를 주목해온 온 세계 앞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신뢰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의 운명과도 직결된 분수령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임금 직불, 근로자 공급, 통행·통신·통관 등 3통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재발 방지 대책이다. 지금도 북한의 개성공업지구법, 우리의 개성공단지원법과 관련법령에서 투자 보장과 신변 안전, 공단의 정상적인 운영 등에 관한 법적 조치가 있음에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점이 문제다. 국제법으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먼저 북한 당국은 자발적으로 공단을 조성하고 적극적인 기업 유치를 한다는 마음으로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북한은 개성공단과 정치·군사적 문제를 연계시키지 말고 양자를 분리해서 처리해야 한다.

 북한에 공단을 조성하고 기업을 유치시키는 것을 지금처럼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면 남북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언제든지 출입제한, 근로자 공급 중단, 강제 귀가 조치 등 북한 당국이 공단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조건으로 공단이 정상화돼도 공단 운영 중단사태가 다시 올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재발 방지 문제는 남북 당국의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법과 제도를 지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현재 개성공업지구법은 개성공단을 무비자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지면 북한 군부의 출입 차단과 같은 조치를 방지할 수 있으며 개성공단도 특구다운 특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성공단 정상화와 함께 통일부가 발표한 개성공단 국제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공단 규모와 운영이 세계적 수준에 맞도록 종합 개발계획을 재조정하고 대기업·외국기업과 다양한 업종이 유치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재발 방지를 위한 중장기 대책과 더불어 급박한 현안인 완성품과 원·부자재의 해결을 위한 기업 대표들의 즉각적인 방북도 동시에 추진해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분단 60년의 한반도가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 같은 남북 경제 협력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하루속히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키고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김동근 초대 개성공단 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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