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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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베트벤」의 교향곡이 광고안내음악으로 변신한 현대를 슬퍼한 사람이 있었다. 그 정도의 슬픔은 못 될지라도 나는 요즘 조그만 실망감을 씹고있다.
아침 점심 저녁 때할 것 없이 북한산쪽으로 오가는 숱한 쓰레기차들이 「소녀의 기도」를 뿌리며 달리고 있다.
○…어느날 아침 나는 행주를 쥔 채 대문 밖까지 뛰어나갔다.
평소부터 아끼던 곡 「소녀의기도」가 맑은 아침 기류를 타고 조용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갸우뚱거리는 내 앞에 쓰레기차가 다가온다.
쓰레기차들이 소리대신 그 음악으로 신호하는 것이었다.
○…바로 음악의 생활화란 얘기겠지만,「템포」가 느린「소녀의기도」를 들으며 쓰레기를 버린다는 게 어쩐지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꼭 음악소리를 내어 생활이「리드미컬」하기를 바란다면 활발하고 경쾌한 음이 더 어울릴 것이다. 부지런히 빨리 치워야할 쓰레기를 안은 주부가「소녀의기도」의 「템포」처럼 움직인다면 야단날 것이다.
「바다르체스카」씨.
당신의 유일한 작품이 한국에서는 쓰레기를 싣고 거리를 달립니다요.
하늘을 보며 이렇게 얘기해 보는 내 모정은 쓰레기 같았을까?

<주영숙·23세·주부·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내리 50l의4호·한중항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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