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15년…그날의 전장|일선 지휘관들의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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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3년7월27일.
강릉, 공군제10전투비행단.
조반을 부랴 부랴 마치고 우리들은「브리핑」실로 모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휴전성립의 정보는 알고 있었던터이나, 막상 오늘이 휴전조인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내일부터는 출격도 없으려니하고 보니, 전투가 끝난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나질않는다.
「워·룸」의 좌중이 조용해지고 기상「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이어 적정판단과 우군의 현황.
-지금 생각해 보면, 전지에 출격나가는 것이 왜 그리도 기쁘고, 고대되는 것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불안하거나 두렵기는 커녕, 오히려 애기와 함께 적진상공에 떠 있는 것이 기지에 있는 시간보다도 더 즐겁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새벽출격을 나가서 적 「빙커」나 진지를 때려부수고 동해안을 따라 아침녘의, 해금강을 내려다보며 돌아오는 귀로의 기쁨은 생각만해도 다시 한번 해보고픈 충동을 억제할길이 없는 것이다. 이날 나에게는 영광스럽게도 두차례의 출격「스케줄」 이 내려졌다. 제1회11시20분 고성남방 월비산고지, 제2회 17시20분 고성남방대강리 (이날 한번밖에「스케줄」에 안들었던 Y중위는 비행단장에게 생떼를써서 2백회 출격기록을 목전에둔 김금성소령(당시계급61년8월19일순직고준장)이 자기차례를 양보해줄 정도로 이날의 출격지원경쟁이 치열했었다).
17시20분 한국공군이 최후출격편대는 우렁찬 폭음을 강능상공에 뿌리면서 하늘로 솟았다.
김금성소령을 편대장으로하는「스킬·풀」편대 4기는 동해안을 옆으로 두고 일로북상「범·라인」을 넘고 목표에 접근 했다. 2번기였던 나는 요기와 함께 편대장의지시대로 폭탄「스위치」와 무장계통을 재점검하면서 「레시바」에다 온신경을 쏟았다.
드디어 진입점에 이르니 편대장의 엄숙한 명령이 들리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쏟는 이폭탄이 적에 주는 최후의 세례가 된다는것을 명심하라! 귀관들은 제10전투비행단의 최후편대로서 기관포탄의 마지막 한발까지 적진에 명중시키고 돌아가야 한다. 자! 들어간다!』 우리는 이날 고성남방대강리에 있는 적의보급창고와 「벙커」를 멋지게 해치우고 4기편대가 무사히 귀환했다. 그 때의,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 오르고 있다. 이순간에도 김금성편대장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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