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전제 없이 북한과 대화 없다" 박근혜정부 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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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북한을 향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주 중국을 방문한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을 포함한 대화 용의를 표명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다.

 다음달 6~7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6자회담 및 남북 직접 대화가 조기에 재개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남북 양측이 최근 며칠 사이 서로 최고지도자의 실명을 처음으로 거론하며 상호 비난을 주고받은 상황이라 대화 분위기 자체가 성숙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일 취임 이후 첫 내·외신 브리핑에서 최용해 특사의 대화 용의 표명에 대해 “우리로서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는 입장이며,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된 국제 의무와 약속을 준수함으로써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자회담에서 중요한 것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라며 “(북한이 대화 용의를 표명했다지만) 소쩍새가 한 번 운다고 국화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는 청와대와 외교부·통일부 등 우리 정부 내부뿐 아니라 한·미 외교라인의 교감 속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2박3일간 다각도로 조율을 거쳐 외교부 장관의 입을 통해 정부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비핵화 원칙을 강조한 대목을 평가하면서도 시 주석과 최용해 특사 만남 이후 양측의 발표가 일치하지 않은 데 대해 의구심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언론은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으나 북한이 대화 자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게 석연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기조는 앞서 북한이 6·15 남북 공동행사에 우리 측 민간인의 참여를 제의한 데 대해 이날 통일부가 불허 방침을 밝힌 것과도 맥이 통한다.

 다만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지는 않고 있다. 우선 가능성은 낮지만 북한이 태도를 바꿔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줄 경우 상황이 급변할 여지를 배제할 수는 없다. 윤 장관은 이날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인 미·중·일·러 등 나머지 4개국과 접촉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관련국과의 개별 대화가 6월 중 이뤄질 예정이어서 경우에 따라선 정부의 입장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는 북한이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경우 6월 하순으로 예정된 박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첫 한·중 정상회담을 국면 전환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다음달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한·중 간에도 더욱 긴밀히 공조해 나가도록 할 것”이라 고 강조했다.

장세정·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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