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선 숨도 못 쉬는 난치병…어머니와 13년 만에 바다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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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순씨가 아들 김천수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웃고 있다. [사진 KT렌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 제 어머니세요.”

 김천수(35)씨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컴퓨터로 전했다. 말보다는 컴퓨터가 편해서다. 김씨는 19년째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근이영양증은 뼈에 붙어있는 근육이 점점 변성·위축돼 기능을 상실하는 진행성·불치성 희귀 질환이다. 컴퓨터를 할 땐 화상키보드를 쓴다. 아직 누를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왼손 엄지로 클릭을 하고, 오른손 엄지로 트랙볼 마우스를 움직인다.

 병은 8세 때 소리 없이 찾아왔다. 아들이 자주 넘어지고 계단을 잘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 김하순(58)씨가 그를 데리고 전국의 병원을 전전했지만 병명을 아는 곳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란 병명을 알아냈지만 “치료가 어렵다”는 사실도 함께 알았다. 11세부터 걷지 못했다. 지금은 혼자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에 24시간 의지해야 한다. 몸무게는 30㎏ . 용변도 어머니 김씨가 발로 배를 밟으며 마사지를 해야 내보낼 수 있다고 했다.

 “저는요…, 가수 아이유의 삼촌팬인데요. 꼭 만나보고 싶어요. 몸은 아프지만 건강한 사람들 못지 않게 모든 일에 의욕을 갖고 있어요.”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김씨가 화상 카메라로 기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산소호흡기 너머 또렷하진 않은 음성이었지만 그는 밝고 씩씩했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어머니 김씨는 19년째 꼬박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오고 있다. 치료비 때문에 섬유공장 일을 쉴 수 없었던 그는 1993년 아들을 재활전문시설에 한 차례 보냈다가 다시 데려왔다. 몸무게가 26㎏까지 줄자 생각을 바꿨다. 그때부터 친정식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거의 24시간 아들 옆만 지켰다. 병원 갈 때 말고는 외출도 하지 못했다. 아들과 어머니는 지난 2000년 함께 동해바다를 보러 갔다. 그게 마지막 여행이었다. 아들 김씨의 건강이 더 악화돼 운전기사와 도우미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이들이 13년 만에 바다구경에 도전한다. 23~24일 강원도 속초·양양 일대를 여행할 계획이다. 차량과 인력은 KT렌탈에서 지원한다. 김씨가 지난달 27일 무턱대고 이 회사 홈페이지에 ‘여행가는 걸 도와줄 수 있느냐’란 요청의 글을 올린 게 계기였다.

“사실 제가 어머니 여행을 보내드려야 하는 거죠. 건강했다면 다른 자식들처럼 그랬을 텐데. 그럴 수 없어 마음이 아팠어요.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습니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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