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병의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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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의 봄은 아가씨들의 옷차림에서 온다지만 내뼈가 굵어온 진주의 봄은 남강가 빨래터의 방망이 소리에서 온다. 그러나 육군일등병이 된후 처음맞는 이곳전선에서의 봄은 어디에서 느낄까 궁금했었다.
꽃소식이 북녘으로 치닫는다는 신문을 본지 벌써 한달남짓 하지만 이곳에선 꽃소식 커녕 나물바구니를 든 조무라기 아가씨들의 그림자마저 볼 수 없다. 언제나 같은 모양의 영내에서 기상집합 취침나팔에 날이저무니 봄을 느낀다는게 아예 사치일 밖에 없다.
1·21사태후 우리는 바쁘기가 미친사람널뛰듯 했다. 주말의 외출, 외박은 애초 바라지도 않았지만 주말의 숱한사역이나마 덜어줬으면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지난주말 일직사관의 영내휴무명령-비록 침구의 일광소독과 밀린 빨래완료라는꼬리가 붙긴했지만-엔 모두들 환호성을 터뜨렸다. 밀린 빨래를 다마친 오후 나는 철조망 밑의 잔디밭을 서성이며 밀린 잠까지 메울 잠자리를 찾다가 땅속에서 솟구쳐 나온 이름모를 파란생명을 보았다. 무심결에 전우를 불러모아 그들의 얼떨떨한 표정에 봄이 여기왔다고 말해주니 고개들을 끄덕인다.
주말이면 교외를 찾으며 맞이했던 봄보다 보잘 것 없는 이곳에서 느낀 봄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건 나이탓만은 아닌것같다. 철조망밑의 파란싹이 전해준 생명의 봄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일깨워야겠다. <조용중·일병·군우15∼l07 제2913부대비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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