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상치 않은 한반도 군사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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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반도 주변에 긴장의 파고(波高)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 한국 주둔 미군의 근무 연한을 6개월 연장한 데 이어 B-52, B-1 전투폭격기들의 괌 추가 배치, 한반도 해역으로의 항공모함 추가 파견을 검토하는 등 한발한발 무력 증강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도 이에 맞서 "이는 북한에 대한 압살기도로 자위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양측의 말과 분위기로만 보면 한반도 주변의 긴장상황은 전쟁이 임박한 이라크에 못지않다. 오히려 미국의 언론들은 '북한이 이라크보다 더 위험하다'며 최악의 경우에는 '불바다 아니면 더 나쁜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변화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사회는 안보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를 포함해 너무 느긋하다. 마치 먼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의 일처럼 치부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안보 말고 더 급한 일이 무엇인가.

한반도 주변의 무력증강 분위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최근 조치들은 두가지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이라크전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오판(誤判)과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경고의 성격과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 등을 강행할 때를 대비한 예비적 조치의 성격이다. 결국 지금 한반도의 군사적 변화는 북한의 핵 개발 강행이 빚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의 철회와 핵동결 해제 상태의 원상복구 선언 등을 통해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없어지며 북한의 체제보장도 가능해진다.

우리는 최근 조치들이 한.미 간에 사전 합의나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우리와 조율을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것이라면 한.미동맹에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동맹의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미군의 군사력 증강 문제 등에 대해서도 동맹국으로서 긴밀한 협의를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