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들 집 안 사는 ‘만가지’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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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식기자] “그러면 쓰나. 몸 하나 맘 편히 뉘일 곳은 있어야지. 매번 옮겨 다니면 불안해서 어찌 사니. 그러면 직장 일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도 아버지 때는 지금 우리와는 다르죠. 당시 경제가 활황을 이어갔잖아요. 물가도 높지 않았고. 그러니 월 해도 손에 목돈을 쥐었고 그걸 기반으로 집도 땅도 살 수 있었죠.”

“밥은 밖에서 먹어도 잠은 자기집에서 자라는 말, 하나 틀린 거 없다. 단칸방이라도 자기집이 없으면 재산을 모으기 힘들어. 내가 살아봐서 하는 말이니 명심해라.”

“무슨 뜻인지 알아요. 저라고 안 그러고 싶겠어요. 애들 교육비니 뭐니 하면서 아무리 해도 어려우니까 그렇죠. 집 사는데 평생의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으며 살순 없잖아요.”

지난달 동창회 모임에서 친구가 아버지와 경제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자주 싸운다며 들려준 대화 내용이다. 아버지는 목돈을 쥐는 첫걸음이 집 장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집에 대한 생각이 주거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 목적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달랐다. 집에 대해 거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자녀교육·자기개발·가계부채 등에 쫓겨 집 장만에 엄두도 못 낸다는 입장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과 물가를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럴 바엔 집 장만에 드는 기회비용을 다른데 투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집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런 생각의 차이가 얼마 전 수치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의 ‘2012년 주거실태 조사’에서 ‘내 집을 꼭 마련하겠다’는 응답이 2010년 83.7%에서 2012년 72.8%로 감소했다.

주택에 대한 자가점유율도 고소득층은 69.5%에서 64.6%로, 중소득층은 54%에서 51.8%로 각각 줄었다. 게다가 생애 첫 내 집을 마련하는 가구주의 나이도 38.4에서 40.9세로 2.5년이 늘었다.

앞으로 내 집 마련 계획을 묻는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한 무주택자도 26.9%에서 33%로 증가해 가중된 경제부담을 나타냈다.

집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는 건 투자 대상으로서 매력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자리한다. 주택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세인데다 전망도 밝지 않아 아버지 때처럼 집을 팔아 수익을 내는 매매차익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낮아진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는 60㎡형의 경우 시세가 2억9000만원, 전세는 2억3000만원으로 6000만원 차이다. 이 곳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오른 78%로 서울 평균(57%)보다 높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집을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세가가 올라도 전세를 고집한단다. 임대료 부담이 늘었음에도 감수하려고 한다. 부동산 침체기에서 집을 구입하면 부담만 커지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대출까지 받아 샀는데 집값이 떨어지면 경기 침체 여파로 이를 회복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구감소 추세가 집값 하락을 더 부채질할거라는 전망도 이런 생각을 부추긴다.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인식 바뀌어

집에 대한 개념이 바뀐 점도 한 배경이다. 과시용이나 재테크 수단으로서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일부에선 집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회의 분위기도 일고 있다. 값비싼 집과 땅에 꿰맞춰 들어가 이를 유지하느라 힘을 들이느니 좀 불편해도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쪽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저렴하고 20년 동안 임대로 살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에 관심을 갖는 것도 집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하지만 이게 이유의 전부라고 보기엔 왠지 다소 부족해 보인다.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하다는 30~40대 지인들에게 사정을 물어보면 또 다른 이유들을 꺼내 보인다.

이들은 98년 외환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와 취업난의 충격을 겪은 세대다. 정년을 보장받다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십 년 공든 사업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며 빚에 쫓겨 자살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자신들 역시 당시 경제난으로 오랫동안 백수로 지내거나 집안이 쓰러져 한동안 방황했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그 여파로 경제력을 확보하지 못해 캥거루족(독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는 사람)으로 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어도 주택 마련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부모 집에 다시 들어가 사는 것도 요즘 세태의 한 모습이다. 집을 살 수 있는 비용이 마련돼도 부모 세대만큼 구입자금 대비 좋은 집을 사기도 만만치 않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빚쟁이로 시작하는 현실도 내 집 장만 시기를 지연시키는 주범이다.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자금을 대출받아 학업을 마친 지인 중엔 대학을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는데도 허덕이고 있다. 게다가 지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위한 병원비 지출 때문에 저금은 꿈도 못 꾼다.

젊은 세대가 내 집 마련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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