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모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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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워싱턴 방문은 단 하나를 제외하면 대성공이다. 그 하나란 박 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 평화구상이다. 모호하고 불완전하다는 인상을 준다. 박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과 여타 동북아 파트너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대화 프로세스, 즉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 출발점은 환경 이슈, 재난 구조, 원자력 안전, 테러 방지 등의 연성 이슈에서부터 대화와 협력으로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신뢰는 상호 협력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며 이 구상은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 그다음에 핵심 문장이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도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 평화포럼이란 구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에 한국과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별도로 제안한 바 있고 2005년 9월 발표된 6자 공동성명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제안을 새로 포장해 북한이 전례 없는 도발을 저지른 뒤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발표하는 것은 문제다. 다음과 같은 비판적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평양은 2005년 9월의 비핵화 합의를 준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해당 포럼은 핵무기를 지닌 북한과 “평화 공존” 하기 위한 틀처럼 비치지 않을까? 물론 박 대통령의 제안에는 평화 협정에 대한 논의가 포함돼 있지 않으며 이는 중요한 사항이다. 북한이 추진 중인 핵무기 프로그램을 정당화해줄 잠재적 가능성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설사 그것이 다자간 논의라 할지라도 한 나라의 국경을 넘는 안보 이슈를 논의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다른 당사자들이 비핵화 정책을 포기하고 평양과 예전과 다름없는 관계를 유지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위험 말이다. 물론 북한이 포럼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핵 포기 약속이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이 같은 위험은 없어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에선 이 같은 조건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둘째, 만일 이것이 점진적 프로세스라면, 다시 말해 북한이 2005년 9월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 탓에 처음에는 배제되는 그런 프로세스라면 서울은 어떻게 중국이 여기에 참여하도록 설득할 것인가?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을 설득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는 평양이 협력을 거부할 때 북한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6자회담의 바깥에서 에너지와 기타 국제 안보이슈를 논의할 별도의 5자 프로세스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가끔은 러시아도 이런 제안들에 동의했다. 하지만 베이징은 이 주제에 관한 한 그것이 어떤 종류의 변형된 형태가 됐건 간에 확고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을 노골적으로 따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런 제안에 찬성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것은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것은 또한 셋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서울 프로세스가 정말로 달성하려는 목표는 무엇인가? 뭔가 다른 것을 노리는 위장책은 아닌가? 실제 목적은 북한과 어울리는 것을 가려주는 위장막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닌가? 한반도의 미래에 관해 서울과 논의하도록 베이징을 끌어들이는 데 목적이 있는가? 또는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따라 서울이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인가? 이들 질문에 어떤 답변이 나오는가에 따라 이번 제안의 생명력이 결정된다.

 동북아 평화 포럼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럽연합(EU)이 60년 전 프랑스와 독일이 석탄과 철강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작은 조치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북아에서 이와 비견할 만한 노력은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영토 분쟁이 있는 모든 섬과 관련한 공동 어업협정이 알맞을까? 아니면 에너지 협력체제일까? 서울 프로세스는 좀 더 쉬운 문제를 해결한 뒤 이런 방향으로 진화해갈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지적했듯 “우리의 구상이 겹치는 곳에서부터 출발한다면 나중에 보다 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통의 기반을 찾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 서로 이익이 되는 해법을 찾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은 의미가 통하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힘있는 정책 실행자들의 관심을 끌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한다. 이들 정책 결정자는 박 대통령이 말했듯 협력과 경쟁이라는 ‘아시아 패러독스’에 갇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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