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부르는 '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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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하나.

2002년 6월 4일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 모두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한국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아나운서: (흥분된 목소리로)골키퍼 김병지 잡았습니다. 위기 모면. 길게 내 찬 볼. 한국 찬스. 안정환! 앞쪽으로 찔러준 볼 황선홍, 슛~~~. 골~~골~~~! 골! 황선홍. (격양된 목소리로)환호하는 붉은 악마들. 경기장은 가득 메운 6만 여명의 팬들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합니다.

해설자: 안정환선수의 스루패스가 일품이었습니다. 황선홍선수가 볼을 잡은 것도 훌륭했지만 공간 침투가 아주 좋았어요. 멋진 골입니다.

아나운서: 경기 끝. 팬들의 함성에 힘을 얻은 우리 한국이 예선 1차전에서 동구권의 강호 폴란드를 물리치고 감격적인 월드컵 첫 승을 기록했습니다.

43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꼭 이렇게 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18일(이하 한국시간) 친선경기에서 폴란드가 졌다. 미국도 졌다. 폴란드와 미국은 나란히 2연패를 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더구나 폴란드는 홈에서 2연패를 했다. 폴란드와 미국의 패인에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자. 일본, 루마니아전에서 보여준 폴란드와 독일, 아일랜드에서 보여준 미국의 플레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폴란드와 미국의 패인을 참고사항 정도로만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폴란드는 일본전도 그랬고 루마니아전도 그랬듯이 첫 실점 후 급속히 팀 조직력이 무너졌다는 점이며 미국은 후반 이후 급속히 체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으로선 좋은 공부가 된 셈이다. 폴란드와 미국의 경기력을 잘 분석해 ‘승리 방정식’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될 사항이 있다. 바로 관중들의 몫이다. 한국과 같은 조에 있는 3팀은 한국 축구를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축구 문화엔 낯설 것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한국 특유의 응원에 모두 붉은 색 옷을 입고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일방적으로 응원한다면 상대는 분명 위축될 것이다.

상상 둘.

지난 해 12월 서귀포에서 있었던 한국과 미국과의 경기. 경기 당일 비가 내려 4만 여 관중들이 모두 흰 우비를 입고 응원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하얀 눈밭’을 연상케 하는 장관을 연출시켰다.

당시 미국 팀이 볼만 잡으면 관중들은‘우~’하는 야유를 보내 상대를 주눅들게 했다. 응원이 승리에 직접적인 요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승리를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요인(부담+중압감)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미국은 본선에서 한국과 싸울 때 또 하나의 적을 두고 싸울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응원이다. 그들은 우리의 응원을 생각할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며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우리의 함성소리에 움찔한 틈에 ‘원-투 펀치’를 날린다면 반드시 한국은 폴란드와 미국 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활약을 해야 겠지만 관중들도 선수들 못지않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16강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홈’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모 TV광고에서처럼 정말로 “우리 한국이 폴란드를, 미국을 꺾고…”라는 말을 기대하면서.

그땐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일 지도 모른다.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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