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유목을 위하여 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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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승희(1952~) '유목을 위하여 7' 부분

말레이 사람들은 대부분 나비를
쿠푸쿠푸나 라파라파라고
부른다고 하네.
나는 라파라파가 좋아.
무언가 음악처럼 생생한 움직임이
바람 속에 팔락이는
무한의 악보가 그려진 날갯짓이
미소처럼 느껴지지,
두 조각으로 나뉘어진
날 것 그대로의 생명,
녹색이 많이 묻은 화려한 무용

나비는 짐이 없다. 짐이라고 해봐야 발에 묻는 꽃가루 정도일까? 나비는 집이 없다. 울타리 같은 것도 없다. 유목민보다 살림살이가 더 단순하고 지극히 가난하다고 할 수 있다. 나비는 풀의 나그네처럼 풀에서 풀로 옮겨다닌다. 바람이 대지 위의 음악이라면 라파라파(나비)의 날갯짓은 하늘의 무용이다. 대초원에 풀들이 자라고 지평선에 꽃피는 봄은 이사철이기도 하다. 사람의 집에서 끌어낸 짐들은 때로 골목길을 막아버린다.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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