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까지 거드는 대북송금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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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현대상선 대북 2천2백35억원 지원'과 관련한 북한의 신속한 해명과 대남 비방은 이를 둘러싼 의혹을 되레 증폭시키고 있다.

대선 전 한나라당이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 의혹을 제기했을 때 날조된 모략극(평양방송)이라고 주장했던 북한이 이처럼'시의적절하게' 대응한 배경이 우선 의심스럽다.

북한 아태평화위 이종혁 부위원장은 SBS방송과의 인터뷰 형식을 빌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송금의혹에 대해 "현대와 아태평화위 간의 정상적인 거래였으며 이를 6.15 정상회담과 연계시키는 것은 불순한 모략"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 교류협력사업을 전담하는 아태평화위 책임자의 이 같은 언급은 사실상 북한의 공식반응으로서, 의혹의 중심에 선 김대중(DJ)정부를 엄호하기 위한 지원사격이라고 할 만하다.

북측이 전례없이 관광.철도.통신 등의 사업대금이라는 점을 문서 형식으로 직접 기술해 전달한 사실 등도 북한의 '곤궁에 처한 남한 당국 거들기'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북한의 거들기는 DJ의 "사법심사 대상 아니다"라는 발언에 이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의 "정치적 해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 당혹감과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북한까지 나서서 우리의 사법체계를 흔들려고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또 이 의혹 제기를 '보수세력의 방해와 도전'으로 규정한 이종혁의 발언에 이어 아태평화위 대변인도 "반통일 세력의 불순한 의도"라고 주장을 하는 등 송금의혹으로 우리 내부의 편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

북한의 현대 감싸기도 문제다. 북한은 현대아산의 금강산 육로 사전답사 제안에 침묵하다가 감사원이 감사발표를 하자 다음날 확답을 보내오는가 하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을 앞세워 군사분계선을 통과토록 하자고 제의했다.

북한은 남북 교류를 빌미로 남한을 멋대로 재단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지 모르나 이는 착각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고 위협하는 식으로는 '동족 사이의 정상적인 교류'를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다. 이런 데 흔들리거나 이를 빌미삼아 송금의혹을 적당히 처리하려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