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지지 않는 여름방학 - 한말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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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 상당히 엄한 규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용돈은 넉넉해서 그 또래에는 부자로 통했던 것 같으나 학예품과 저금하는 것 외에는 돈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엄한 속에서도 여름방학이 되면 공연히 밖을 배회하고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렇다고 부모의 감시 없이 바닷가에 간 일은 한 번도 없지만. 어느 날 나를 찾아 온 친구와 함께 대문을 나섰는데 친구가 가자는 대로 시장구경을 갔다. 시장 입구 길가에 파파할머니가 앉아서 옥수수와 감자를 팔고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 할머니가 가엾어져서 가졌던 10전을 주었더니 할머니는 큰 바구니에 든 옥수수와 감자를 다 주었다. 친구와 나는 창고 뒤에 숨어서 먹기 시작했다.
재수 나쁘게도 시장에 온 우리 집 식모 아이가 나를 보았다. 나는 바구니를 든 채 뺑소니를 쳤다. 집에 갔더니 벌써 정보가 들어와 있어서 나는 한기간 동안 꿇어앉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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