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시절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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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침상을 치우고 나서 집안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처녀 시절에 만들었던 「스크랩·북」을 펼쳐보게 되었다. 먼 곳도 아닌 바로 책상 위에 꽂혀 있건만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오랜만에 펼쳐보니 처녀시절의 푸짐했던 꿈이 머리 속에 아른히 피어오른다. 「스크랩·북」속엔 아담한 양옥에서부터 육아문제, 재단법, 요리솜씨, 가계부 등등 그대로 꿈의 조각을 붙여 놓은 「모자익」화폭이다.
○…막상 결혼을 하여 살림을 꾸려나가 보니 결혼 전에 생각했던 계획이란 글자 그대로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의 시중을 들고나면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이가 타오는 월급으론 이것저것 가계부를 메우다보면 한푼의 여유도 남는 게 없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같은걸 느껴 본적이 없으니 웬일일까?
○…『고단할 텐데 좀 쉬려무나』하시며 빈틈없이 아껴주시는 시부모님의 사랑과 이따금 식구들을 웃겨주는 시동생의 능청스런 「유머」엔 하루하루가 흐뭇하기만 할뿐이다. 실상 처녀시절의 꿈이란 다름 아닌「스위트·홈」이 아닐까. <경보경·28·주부·서울영등포구 구로 2동 간역주택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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