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베 총리의 역사 기억상실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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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이 10일 과거 전쟁으로 피해를 끼친 한국·중국 등 아시아 이웃 나라를 고려하도록 돼 있는 현행 교과서 검정제도를 수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은 이날 일본 국회에서 “아이들에게 일본에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낄 수 있는 역사인식을 교과서에 집어넣는 게 필요하다”며 “긍지를 지닌 일본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며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한술 더 떠 “(교과서를 통해) 긍지를 갖는 게 기본이며 그게 없으면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후손들에게 역사를 객관적으로 가르치는 대신 부끄러운 일은 슬쩍 감추고 침략행위는 대놓고 미화하면서 과거사를 멋대로 재단해 가르치겠다는 그릇된 발상과 다름없다. 일본인으로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치스럽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망상이 될 수 있다.

 이웃 나라 국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모른 척 덮어버리고 과거사를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선택적으로 기억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에 대한 기억상실증이다. 스스로 긍지를 느끼고 자신감이 있는 나라라면 이렇게 과거사를 왜곡해 후손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겠다는 억지 행동은 하지 않는 법이다. 이처럼 역사를 망각하면 같은 실수를 또다시 범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일본이 떳떳한 나라가 되려면 부끄러운 일을 포함해 역사적 사실을 다음 세대에 철저하게 교육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은 후손들이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나은 미래를 도모할 때 비로소 일본은 존경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후손들이 일본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는 길이다. 아베 총리는 침략의 과거사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보상하면서 후손들에 대한 철저한 역사교육으로 재발 방지 노력을 그치지 않는 독일이 왜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